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크팍 Oct 19. 2023

나의 수습일지 #노크맨

형사과 트라우마를 깨다

본서 집착남은 정보관에도 집착했다. 보통 정보관들은 출근한 뒤 외근을 나가기 때문에 아침 일찍 정보계 마와리를 돌아보라고 조언해 줬다. 동대문서에 처음 간 날도 집착남 지시에 따라 정보계 마와리를 돌기 위해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이날은 외부 게이트에서 기자라고 하니 특별한 제지 없이 들여보내 주었다. 사실 출입증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번에 새로 배치돼서 아직 발급이 안되었다고 하니 들여보내 줬다. 동대문서에는 기자실이 있다. 혜화라인에서는 혜화서 기자실에 가장 많은 기자들이 드나들지만 동대문서에도 기자들이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경찰이나 게이트 근무자들에게도 익숙한 듯 보였다.


혜북라인 경찰서들은 전부 외곽에 게이트가 있었고 대부분 인솔자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가도 건물 내부에서 2층 이상 올라가기 위해서는 출입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동대문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착남 지시를 따르기 위해 정보과장과 정보계에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건물 내부 게이트를 뚫고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다 보니 건물 내부 게이트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는 경찰을 자연스레 따라 들어갔다. 게이트 근무자도, 함께 들어간 경찰도 그다지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침투에 성공한 것이다.


곧바로 정보계로 찾아갔지만 정보관들은 만날 수 없었다. 정보계 서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를 다시 나가면 언제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모르니 무작정 안에 있기로 했다. 정보계가 있는 층부터 모든 사무실 문을 무작정 노크하기 시작했다. 이제 거절당하는 일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 여성청소년과의 한 팀장님을 뵐 수 있었다. 사실 처음 노크하고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직원들이 경계하고 다음에 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내가 안쓰러웠는지 팀장님이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며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낙에 여청과의 팀들은 경계를 많이 해서 처음 이야기를 나눠본다고 하니 본인도 원래 그런다고 했다. 사실 팀원들이 돌려보내려고 할 때 다른 곳에서 계속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팀장님도 기자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항상 돌려보내지만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다루는 사건들도 민감하고, 언론 대응 창구도 과장으로 일원화가 되어있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경찰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커피를 내어 주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팀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사무실을 나가는 나에게 수습기자 생활이 힘들겠지만 잘 버티고, 만날 사람이 없으면 언제든 들르라며 응원해 주셨다. 팀장님 덕에 기분 좋게 오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게이트를 나가면 들어오기 힘드니 보고도 그냥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난 여전히 계단에서 보고를 작성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 한 분이 왜 계단에서 이러고 있느냐며 1층 의자에 앉아서 일하라고 말씀하셨다.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니 본인은 외사계장이라고 하셨다. 약속이 있어 나가신다고 해서 오후에 찾아뵙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했다.


여청과 팀장님부터 동대문서는 따듯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부터 혜북라인에서 내 마음의 고향은 동대문서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도 노크 행렬은 계속됐다. 다시 게이트를 자연스레 통과해 침투했고 오전에 들르지 못한 곳들을 찾아갔다. 그러다 영등포에서 생긴 형사과의 트라우마를 깨 주는 강력팀장님을 뵙게 되었다.


처음 강력팀 사무실들이 있는 곳에 갔을 때 덩치가 매우 좋으신 분을 뵈었다. 밖으로 나가고 있던 분이었는데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니 강력팀장이라고 했다. 사스 마와리를 하고 있는 것이냐며 요즘은 어딜 가도 경찰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힘내라고 응원해 주셨다. 약속이 있다고 하셔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형사과에 이런 분도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문이 열린 곳이 보여 또다시 무작정 노크를 시전했다. 강력팀이었는데 여기서도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이틀 전 cc를 따러 갔던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팀장님께서는 이런 사건이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팀장님도 기자인 나를 다소 경계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이 팀장님과는 동대문서에 갈 때마다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 뵈었던 이날 퇴근한 뒤 감사함을 느껴 팀장님께 문자를 남겨 드렸다. 영등포라인에서 항상 강력팀을 찾아가면 쫓겨나기만 하다가 따듯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팀장님은 장문의 답장으로 나를 한 번 더 감동하게 만드셨다.


옛날에는 형사나 기자나 서로 고생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같이 식사도 하고 사이좋게 지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워낙 사건은 쌓여가는데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여유가 없고 기자들에게도 불친절해지는 것 같다고도 하셨다. 형사들끼리도 왜 좋은 머리로 저렇게 고생하는 기자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한다며 다음에 오면 커피를 대접해 주겠다고 하셨다. 장문의 메시지를 읽으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고, 그렇게 형사과에 가져왔던 적개심이 풀어졌다.


정말 다음 동대문서를 방문한 날 팀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환하게 웃으며 내려오셨다. 커피를 들고 옥상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팀장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팀장님께 들었던 옛날 형사기동대 이야기들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날의 노크 행렬은 서장실 습격까지 마친 뒤에야 끝이 났다. 동대문서 마와리  첫날, 무작정 노크 작전으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좋은 기억이 남으니 이후로는 기본적인 마와리 전략으로 침투와 노크를 선택하게 됐다.


https://blog.naver.com/chicpark_/223241144375

이전 03화 나의 수습일지 #본서 집착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