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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팍 Oct 16. 2023

나의 수습일지 #본서 집착남

경찰서 게이트도 통과 못하는 수습기자

혜북라인 2일 차. 다시 노원경찰서로 출근했다. 첫날은 일보를 올리고 바로 cc를 따러 갔기 때문에 사실상 이날이 혜북라인 첫 마와리였다.


노원서 마와리는 시작부터 담벼락에 가로막혔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담장이었다. 영등포라인에 있을 때는 경찰서 건물 로비까지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건물 외부 펜스부터 게이트가 있었다. 근무자에게 기자라고 말했지만 출입기자가 아니면 인솔자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먼저 혜북라인을 돌았던 동기들이 혜북 2진 이 모 선배는 본서만 돌게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 흔한 흡연장 마와리도 시도해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연락망을 열어 과장 라인에 연락을 돌렸다. 몇몇 과장님들과 통화가 되었지만 당장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결단이 필요했다. 이대로 본서에만 매달리다가 한 명도 만나지 못하면 선배에게 털릴게 뻔했다. 근처 지구대와 파출소 위치를 파악한 뒤 민트(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출퇴근 이외에 민트에 시동을 걸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헬멧에 블루투스 장치도 달지 않아 주행 중에는 전화를 받는 것이 어려웠다. 무엇보다 선배에게 카톡이 왔을 때 바로바로 답장하기가 어려웠다.


당장 털리기보다는 주행 중 선배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빠르게 이동한 덕에 보고 전까지 지구대 두 곳을 다녀올 수 있었다. 팀장님들은 따듯하게 맞아주셨고, 한 분은 커피를 타주시며 같이 담배도 태우자고 하셨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본서에서 거절만 당했다 보니 마음이 녹아내렸다.


마냥 담소만 나눌 수는 없었다. 당시 경찰국 신설이 뜨거운 이슈였는데 경찰 직협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었다. 언진재 교육이 끝난 뒤 복귀했던 첫 주말 근무 때는 이와 관련해 전국 총경회의가 열리기도 했었다. 경찰국, 직협, 총경회의에 대한 정보보고 거리를 찾기 위해 마와리를 돌며 관련 정보를 수집해 보기도 했다.


보고는 다음 마와리를 돌 지구대 근처로 이동해서 준비했다. 보고를 올리자 선배가 물었다.


“본서 안 돌고 지파 간 이유가 있어?”


게이트 통과도 안되고 당장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선배는 내선이라도 돌려서 만날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한 가지 미션도 던져줬다. 정보관을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기왕에 왔으니 바로 앞에 있는 지구대만 들렀다가 다시 노원서 본서로 이동했다.


선배 말대로 내선으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정보관을 만나기 위해 정보계에도 전화를 했지만 도통 받지를 않았다. 전화를 돌려도 만나준다는 경찰이 없었다. 전부 언론 대응 창구인 과장을 만나라거나 팀장이 자리를 비웠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결국 지구대 한 곳 말고는 그 누구와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어쩌겠나. 선배에게 혼이 났다.


사실 본서에 집착하는 이 선배는 나를 무섭게 혼낸 적이 없었다. 한 번은 혜북라인을 같이 돌던 동기 장 기자가 지각했던 적이 있다. 출근 보고를 3분 늦게 올렸는데 이 선배는 장 기자를 하루 종일 갈궜다. 지금은 수습들에게 악명 높은 선배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항상 마와리를 어떻게 돌면 좋을지 방향을 설정해 주고, 정보가 나올만한 이야깃거리를 알려주었다. 물론 내가 크게 잘못하거나 실수한 것도 없기는 했지만, 본인 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후배였기에 대하기가 어려워했다는 이야기도 퇴사 후에 듣게 됐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본서 마와리를 시도했다. 정말 노원서 모든 부서에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으니 뙤약볕이 내리쬐는 길 한가운데서 노트북과 전화기만 부여잡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정말 쓰러질 것 같았다.


찾아보니 이날 낮 최고기온이 33도가 넘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눈앞에 보이는 ATM 기기 부스에 들어갔다. 미세하게나마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경제팀장 한 분이 만나주겠다며 들어오라고 했다. 하마터면 2시간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보고를 올릴 뻔했기에 팀장님이 구세주 같았다.


팀장님을 만나고 나온 뒤 2시간 동안 한 명을 만났느냐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얼마나 많이 전화를 했는지도 마와리 보고에 올렸다. 2진 선배는 아마 총을 맞았는지 1진 선배가 보고를 받았다. 전화 걸었던 것을 왜 보고에 올렸냐며 또 한소리를 들었다. 한 명 만났느냐는 구박보다는 낫지 싶었다.


본서에 들어가고 나니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그저 지나가는 경찰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흡연장에 죽치고 있다가 경찰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좋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분들이 보기에도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1시간 넘게 땡볕에 서있었더니 셔츠는 땀으로 흥건했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 팀장님은 시원한 물을 마시라며 연거푸 물병을 채워주기도 했다.


마와리를 돌리는 방식은 선배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내내 라인 내 한 경찰서만 보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하루에 한 경찰서에만 머무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혜북 2진이었던 이 선배는 본서에 집착하는 스타일이었다. 대부분의 경찰들이 퇴근한 야간에도 다른 경찰서로 이동해도 좋으니 당직 과장, 당직 형사팀, 당직 강력팀 등 당직 근무자를 만나라고 했다.


다른 경찰서로 이동해도 된다는 선배의 말에 민트를 타고 야간에만 경찰서 3곳을 돌았던 적도 있다. 그래도 이 선배 덕에 본서에 대한 마음의 벽은 허물 수 있었다. 본서 경찰들은 잘 만나주지 않는다는 인식을 깼고 많은 핍박과 거절에도 굳은살이 생겼다. 오히려 적응한 뒤에는 힘들게 먼 거리에 있는 지파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니 본서 마와리가 좋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각기 다른 선배들의 마와리 행태가 짧은 시간 안에 나를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줬구나 싶다.


https://blog.naver.com/chicpark_/2232382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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