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마와리에 복귀했다. 2주간의 천국 같은 언진재 교육을 마친 뒤 첫 출근이었다. 25일부터 새로운 라인으로 배치되었는데, 그전에 주말 근무가 있어 진짜 영등포라인에서의 마지막 출근이었다.
2주나 놀았더니 그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취재지원을 나가느니 편하게(?) 마와리를 돌겠노라며 최대한 도심에서 떨어진 양천서로 향했다. 여유롭게 일보 준비를 마치고 지파 마와리를 돌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홍 선배가 당일 사회부 근무자 전원을 단톡방에 초대했다. 바이스, 법조팀 선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보를 올리기 전부터 바이스의 지시가 내려졌다.
단톡방에 초대되기 전 선배가 인터넷 기사로 단독을 썼는데 바이스 발 기사였다. 현장으로 가서 CCTV를 확보하라는 지시였다. 정확한 현장 주소도 직접 파악해 보라고 했지만 다행히 홍 선배가 빨랐다. 바로 주소를 확인해 단톡방에 올려주었다. 양천서에서 곧바로 짐을 챙겨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이날 수습 3명이 근무했는데 혜북, 강남라인 동기가 한 명씩 있었다. 사건 현장이 경기 남양주시였기 때문에 가장 멀리 있는 나를 보내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혜북라인 동기는 이날 총경 회의를 챙기러 홍 선배와 함께 아산에 내려가게 되었고, 강남라인 동기는 회사로 들어가 바이스와 함께 상황 근무를 했다.
바이스는 나에게 현장에 도착하면 밥부터 먹고 지시한 일을 하라고 했다. 바이스는 평소 밥에 집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직 입봉 하기 전이었던 나와 동기들은 주말에나 바이스와 함께 근무할 일이 생겼었다. 한 번은 동기가 점심에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었다가 바이스에게 혼이 났다.
“너 누가 빵 먹으라고 했냐. 밥을 먹어라 밥을.”
안 그래도 서러운 수습기자 생활인데 먹는 것 가지고도 혼이 나니 동기는 더 서러워했다. 바이스의 밥에 대한 집착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수습기자들은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빵이 아닌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만 들어보면 굉장히 따듯한 의도인데 표현도 따듯할 수는 없을까 싶었다. 이날 이후로 동기들은 바이스의 밥 질문에 대비해 진짜로 밥을 먹었다. 물론 광기 어린 눈빛의 국제부 장 기자는 면이나 빵을 먹고도 밥을 먹었다며 메뉴까지 읊어댔다.
나도 이날 처음으로 바이스와 주말 근무를 하게 되었다. 원래 식사는 항상 밥을 먹어야 한다는 주의기 때문에 밥 때문에 혼날 걱정은 없었다. 12시쯤 현장에 도착해 보고를 했고, 다시 한번 바이스는 밥부터 먹으라고 지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밥 먹을 시간도 잘 챙겨주는 따듯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갔다. 첫 라인에서 동기들은 종종 CC를 따러 다녔지만 나는 이날이 처음이었다.(CCTV 영상을 확보하는 것을 ‘CC를 딴다.’라고 표현한다.) 처음이었지만 주변에 건물도 거의 없고 CCTV를 확보하기 어려워 보였다. 사건이 벌어진 건물 관리인은 경찰이 공문을 가지고 동행해야 보여줄 수 있다며 완강히 거절했다. 옆 건물 관리인은 지방에 내려가 있어 당장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사건 현장 근처 식당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남은 방법은 주차된 차량들의 블랙박스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인근에 주차된 차량마다 전화를 걸어 블랙박스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대부분의 주민들이 흔쾌히 보여줬지만 전 날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영상이 찍힌 차량은 없었다. 그나마 차주 한 분이 전날 경찰이 출동해서 연행되던 상황을 목격했고, 목격한 상황을 설명할 때 밑대기를 확보했다.
* 밑대기: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하는 일. 통상 영상을 블러 처리하거나 영상에 찍힌 싱크만 활용하게 된다.
2시가 조금 넘었을 때 바이스에게 전화가 왔다. 현장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솔직하게 확인 가능한 CC가 없어서 블랙박스 확인 중이며 밑대기 하나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반경을 넓혀 다른 차량들 블랙박스도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바이스는 일단 기사가 큐시트에서 빠졌으니 4시까지만 확인해 보고 영상 확보가 안되면 철수하자고 했다.
사실, 어느 현장이나 가보면 영상이 나올 수 있을지 빠르게 판단이 된다. 이날도 처음 가본 현장이었지만 금세 알아차렸다. 바이스는 못한다거나 안된다는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결국 안되더라도 일단 계속 시도하고 부딪히는 것을 좋아하는 상사 유형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이런 상사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시도해 보겠다고 바이스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를 하려면 실제로도 무언가 계속 시도를 해야 했다. 누군가 주민이라도 지나가면 목격한 바가 있는지 확인했고, 계속 반경을 넓혀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결국 바이스도 이 건은 쉽지 않겠다며 4시 반 철수를 지시했다.
철수 전 이 리포트를 말기로 했던 법조팀 선배가 현장에 도착했었다. 선배는 스탠딩 등을 챙기고 먼저 회사로 복귀했다. 복귀 전 집이 어디냐고 물으며 본인이 현장 더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이야기할 테니 조금 쉬다가 회사로 복귀하지 말고 퇴근하라고 했다. 이유는 회사에서 상황근무하던 강남라인 동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바이스에게 혼났다는 것이었다. 괜히 회사에 들어가 혼나지 말라는 배려였다.
사실 상황근무를 하던 동기와 카톡을 하며 어느 정도 상황은 인지하고 있었다. 바이스가 근무자 단톡방에도 동기 때문에 먼저 인지하고도 단독을 놓쳤다며 주의를 주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회사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같이 근무하는 수습은 무조건 회사로 불러들여 혼을 내는 것이 바이스의 루틴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바이스와 근무한 동기들에게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남양주까지 나와 있으니 현장 퇴근을 지시하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복귀 지시가 내려진 후에도 일부러 더 해볼 게 없나 주변을 배회했다. 마침 그 순간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량이 있어 차주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히 사건 당시 주차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블랙박스를 확인해 봤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그렇게 5시가 조금 안되어 바이스에게 추가 보고를 했지만, 현장 퇴근 지시는 없었다.
6시 반쯤 회사에 도착했는데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느라 다른 동기들도 계속해서 상황근무를 하고 있었다. 도착해서 바이스에게 인사를 하니 현장에서 고생했다며 동기들과 나눠서 상황근무를 계속하라고 했다. 7시 보고를 마치고 나와 동기들은 벌이라도 서듯 나란히 바이스 뒤에 않아 벽만 바라보며 적막을 지켰다.
기사를 마감한 바이스가 우리를 불렀다. 이날 근무와 관련해 각자에게 평가와 충고를 해줬다. 사실상 혼낸 것이지만 바이스의 표적은 하나였다. 단독을 놓쳤다며 혼내던 그 강남라인 동기였다. 나에게는 마지막 차례여서인지, 땀 흘리고 비에 젖은 행색이 불쌍해 보여서인지 “동기들에게 한 말 무슨 뜻인지 알지?”라고 한마디만 했다. 그리고 드디어 퇴근 지시가 내려졌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하루 종일 바이스에게 혼난 동기도, 허허벌판에서 CC를 따겠다며 맨땅에 헤딩하던 나도 도저히 입맛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바이스와의 첫 근무로 반쯤 영혼이 나간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