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만에 동난 명함? 이제는 나만의 명함!
기자라는 직업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명함이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며 한국일보 신입기자 브이로그를 본 적이 있다. 신입기자의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해 보는 내용이었다. 가방에는 명함이 케이스 채로 들어 있었다. 출연한 기자는 언제 부족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뿌린 명함만 수백 장이라는 자막도 달렸다.
실제로도 그랬다. 마와리를 시작하기 전 회사에서 드디어 명함이 나왔다. 100장이라고 했다. 교직원으로 일할 때 명함을 200장씩 제작했었다. 200장은 1년을 충분히 쓰고도 남았다. 기자는 달랐다. 마와리 일주일 만에 명함이 바닥이 났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왜 고작 100장만 만들어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와리를 시작하면 도망갈 것을 염두에 둔 것인가 싶었다.
선배에게 물어보니 부족한 동기들 것까지 취합해 회사에 신청하라고 했다. 동기들과 명함 부족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결국 동기 간사가 취합해 신청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제작에 1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다. 여러 직장을 다니며 명함 제작을 해봤지만 기존 거래하던 업체라면 하루면 명함이 나왔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남라인 1진 선배는 우리에게 명함이 없으면 취재원에게 사진으로 찍어둔 명함을 보내주면 된다고 전파했지만 아직까지 사무직 물이 빠지지 않은 나로서는 비즈니스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뒤에 회사에서 명함을 찾아온다고 해도 이런 사태는 또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참에 나만의 특색 있는 명함을 만들기로 했다. 사실 기존 회사에서 지급된 명함은 내가 어느 회사 소속인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간혹 마와리를 돌며 명함을 건네면 매일경제 기자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명함에서 회사명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명함을 건네고 싶었다. 그간 계약과 관련된 업무를 하며 여러 거래처를 만났던 경험을 떠올렸다. 특색이 있는 명함들이 종종 있었지만 심플한 디자인이 가장 눈에 잘 들어왔다. 그리고 세로 형태의 명함이 독특해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래서 제작 업체에 세로 형태의 심플한 디자인의 명함을 주문했다.
해외 바이어를 만날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명함 뒷면의 영문 표기도 과감히 빼고 회사 로고만 넣었다. 주문 다음날 업체에서는 내가 있는 경찰서까지 퀵으로 명함을 보내줬다. 명함이 떨어진 지 하루 만에 회사에서 나만 쓰는 명함 400장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번 제작한 명함을 퇴사할 때까지 사용했다. 명함이 떨어지면 같은 업체에 수량만 추가해서 주문했고, 부서를 옮긴 뒤에는 부서명만 바꾸어 제작했다.
기억에 남는 명함이라는 제작 목적은 성공했다. 대부분 명함을 건네면 특이하다며 관심을 가졌고 다시 만났을 때는 명함과 함께 나를 기억해 줬다. 어떤 경찰서의 과장님들은 책상 위에 보관 중인 기자들 명함 수십 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내 명함만 세로로 꽂혀 있을 테니 항상 눈에 띄겠다며 전략을 잘 짰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카드나 명함 케이스가 달린 스마트폰 케이스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좋아했다. 보통 꽂혀 있는 명함을 꺼내면 한 번 돌려서 봐야 하는데 꺼내자마자 보이니 좋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명함은 마와리를 돌며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경찰은 명함을 대부분 본인이 제작한다. 세로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을 보고는 본인도 다음에는 세로 형태로 만들어보고 싶다며 제작 업체를 문의하는 경찰들도 있었다.
5개월 남짓 마와리를 돌며 직접 제작하고 사용한 명함만 800장이었다. 누군가는 굳이 명함을 사비를 들여 제작하느냐고도, 또 누군가는 정성이 대단하다고도 했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억해 주는 내 명함에 애착이 있었다.
사실 명함은 당연히 회사에서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명함을 직접 만드는 것도, 사람들 눈에 잘 띄고 기억에 남는 디자인을 하는 것도 생각했다. 유별나거나 창의적이라서 가능했던 일은 아니다. 기자 이전에 다른 직장들을 다니며 회사 명함을 제작해 보고, 여러 거래처의 명함을 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명함 작전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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