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크팍 Nov 01. 2023

나의 수습일지 #커피 한 잔 타 드려

전국 일주 중 만난 한줄기 빛 그리고 뼈기자

혜북라인 첫 주는 취재지원으로 시작해 취재지원으로 끝이 났다.


첫날에는 의정부로 취재지원을 나갔고, 넷째 날에는 서울구치소로 지원을 나갔다. 서울구치소에서는 당시 이준석 전 당 대표의 성상납 의혹 사건과 관련한 참고인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변호인의 워딩을 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당시 혜북라인 1진 홍 선배도 현장에 있었는데 정말 지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수습을 훈련시키기 위해 불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혜북라인 첫 주 금요일에도 평상시처럼 경찰서로 출근을 했다. 이날은 친구에게 소개받은 형사님을 만날 계획이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에 복학했을 때 한창 공무원 시험이 열풍이었다. 고향 친구들도 여럿이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는데 친한 친구들이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다. 친구들은 차례대로 합격했고 지금은 서울, 경기, 충북 각지에서 경찰로 근무하고 있다.


마와리를 돌면서 친구들에게 서울에 친한 경찰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한 번씩 이야기를 했었다. 아쉽게도 영등포라인에서는 소개를 받을 수 있는 경찰이 없었다. 혜북라인으로 옮겨 오니 경기 남부에서 강력팀 형사를 하고 있는 친구가 드디어 소개해 줄 수 있는 경찰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학교 동기인데 우리보다 한 살이 많은 강력팀 형사라고 했다. 먹구름 낀 하늘에서 한줄기 빛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경찰서에 도착해 일보를 올린 뒤 친구가 일러준 대로 강력팀 사무실을 찾아갔다. 친구가 미리 연락은 해두었다고 했지만 내가 아는 것은 형님의 이름뿐이었다. 강력팀 사무실마다 앞에 붙어 있는 자리 배치도를 보며 형님이 근무하는 팀을 찾았다. 그리고 노크맨답게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기자라고 하니 한 형사님이 팀장님에게 안내해 줬다. 팀장님은 여느 형사과 팀장님들처럼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 하셨다. 명함을 받은 뒤 바쁘니 다음에 이야기 나누자며 돌려보내려 하셨다. 그 순간 한 형사님이 자리에 서 일어나 말했다.


“팀장님, 제 동기 친구입니다!”


친구가 미리 연락해두었다는 그 형님이었다. 형님의 말 한마디로 팀장님과 다른 팀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팀장님도 곧바로 형님에게 말했다.


“뭐 하냐. 커피 한 잔 타 드려!”


그렇게 형님이 타주신 커피를 마시며 팀장님, 다른 형사님과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히려 먼저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라고 하셨고, 아직 수습이면 명함도 받아 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먼저 명함을 건네주셨다. 한 형사님은 한정판 명함이라며 전문수사관 과정을 마치고 서울청에서 제작해 준 명함을 주기도 했다. 친구가 소개해 준 형님은 혜북라인에 있는 내내 항상 뭐라도 챙겨주시려고 했다. 식사도 여러 번 했는데 형님 덕에 강력팀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다녀보기도 했다. 끼니 거르지 말라며 항상 간식도 챙겨주셨다.


그렇게 형님과 처음 인사한 날 강력팀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또 취재지원이었다.


포천시로 이동해서 cc를 따라고 했다. 강력팀 사무실에서 급하게 인사를 하고 나와 찾아보니 타사 보도가 먼저 나간 사건이었다. 포천시의 한 공장 기숙사에서 동료들끼리 싸우다가 흉기를 휘둘러 사람들이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포천으로 이동하기 전에 전화 취재부터 시작했다. 경찰서, 소방서, 소방재난본부에 차례대로 전화를 걸어 타사 보도 내용이 맞는지 확인했고 추가로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cc를 따러 가야 했기 때문에 장소도 특정해야 했다.


전화 취재를 마치고 선배에게 보고한 뒤 포천으로 이동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예상 이동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실제로는 두 시간보다 더 소요됐다. 사실 이동시간이 길어 좋기도 했다. 한여름 무더위에 밖에서 마와리를 도는 것보다 광역버스 안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하며 사건 장소 주변을 네이버 지도로 확인해 봤다. 말문이 막혔다. 정말 공장 하나만 덜렁 있는 곳이었다. 정류장에 내려 공장까지 가는 1km 가까운 경로에 상가는커녕 주택가도 없었다. 로드뷰도 돌려봤지만 cctv가 있을만한 곳이 없었다. 현장에 가서 부딪혀볼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며 사건 장소로 갔다.


공장으로 이동하는데 홍 선배에게 카톡이 왔다. 스타벅스 기프티콘이었다. 곧바로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는 웃으며 ‘이게 무슨 전국 일주인가 싶지?’라며 더운데 시원한 커피라도 사 먹으라고 했다. 스타벅스는커녕 편의점도 없는 곳이었는데 놀리는 건가 싶었다.


선배는 일단 밥부터 먹고 현장 주변을 돌아보라고 했다. 이미 15분을 걸어 현장 근처까지 갔는데 밥을 먹으려면 유일하게 식당이 있는 버스정류장 근처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미리 좀 얘기해 주지...’라며 혼잣말과 함께 정류장 근처 식당으로 돌아갔다.


밥을 먹고 다시 공장으로 이동하며 주차된 차량들의 블랙박스도 확인해 보려 차주들에게 전화를 했다. 이상하게도 전화를 받는 차주가 없었다. 그리고 공장 주변을 배회하며 cctv를 찾아봤다. 역시나 확인 가능한 cctv도 없었고 주변에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밑대기라도 따보려 공장 정문 경비실에 찾아갔다. 무더위에 한 시간 정도 야외를 배회했더니 이미 땀으로 셔츠와 바지가 많이 젖어 있었다. 경비원분께서는 사장이 cctv로 지켜보고 있다며 들어오지 말라고 제지를 했다. 하지만 온통 땀범벅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오른 내가 안쓰러웠는지 들어와서 냉수라도 마시라며 배려를 해주셨다. 냉수를 핑계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밑대기를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배회를 시작했다. 그때 중부라인 2진 이 모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현장에 곧 도착한다고 했다. 지금은 내가 뼈기자라 놀리는 친구 같은 선배가 되었지만, 당시는 선배를 처음 보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 긴장도 되었다.


선배를 기다리며 주변을 배회하는데 낡은 창고 같은 곳 안쪽 깊숙이 cctv가 보였다. 혹시 경찰과 소방 차량이 지나가는 것이 찍혔을까 들어가 봤다. 창고가 아니라 실을 뽑아내는 공장이었는데 다행히 사장님이 cctv를 보여주셨고 더운데 고생한다며 아이스크림도 내주셨다. 아쉽게도 cctv에는 출동 장면도 찍히지 않았다.


그렇게 공장으로 돌아가 뼈기자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중부라인 동기들에게 들었던 대로 스윗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뼈기자도 당시 땀에 전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현장에서 스케치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를 따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안쓰러운 모습에 좁은 회사 차량에 끼여서라도 태워 가게 됐다고 했다.


뼈기자와 함께 회사로 복귀하며 혜북라인 첫 주가 끝이 났다.


https://blog.naver.com/chicpark_/223252818322

이전 04화 나의 수습일지 #노크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