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깼지만 여전한 괄시?
형사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 준 강력팀장님 덕분에 마와리를 돌며 어느 경찰서를 가도 형사팀, 강력팀을 자주 찾게 되었다. 당시 기록들을 보면 형사과에 집착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이 찾아갔었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계속 두들기다 보니 친절하고 따듯하게 맞아주는 형사들이나 팀장님들도 계속 만나게 됐다.
한 번은 혜화서 강력팀을 찾아갔는데 인사를 하니 팀장님이 책상을 뒤적이다 동기들 명함을 꺼내셨다. 라인이 바뀌기 전 혜북라인 마와리를 돌던 동기들이었다. 팀장님은 동기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며 내게 강력팀과 형사팀이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다.
물론 경찰서마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습기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을 수 있다. 처음에 있던 영등포라인은 아무래도 사건사고가 많은 지역이었다. 그만큼 형사들도 더 기자들을 경계했을 수 있다.
수습기자들이 찾아가서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경계하나 싶었지만 그건 온전히 내 입장이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중요한 이야기가 튀어나올 수 있다. 주변 다른 경찰들이 하는 이야기 속에 기삿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단독이나 정보보고가 만들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혜화라인이나 노원라인은 상황이 달랐다. 치안수요가 현저히 떨어지는 곳들은 아니었지만 영등포라인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한 곳이었다. 마와리를 돌며 만난 경찰들도 대부분 영등포라인에 있어야 기삿거리도 많이 가져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어찌 되었건 이전 라인에서 겪었던 설움과 새로운 라인의 특성이 만나며 혜북라인은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혜북라인에서 마냥 좋은 기억만 남은 것은 아니다. 온탕에 있다가 급랭탕에 던져지기도 했다. 오후 조 마와리를 돌며 강북서로 출근을 했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본서 집착남 이 모 선배는 본서에 더 이상 만날 사람이 없으면 인근 다른 경찰서로 이동해서 마와리를 돌아도 된다고 했다. 강북서에서 더 이상 마와리를 돌기 힘들어지자 가까운 노원서로 이동했다.
노원서에서 다행히 바로 만나주겠다는 형사팀장님이 있어 경찰서로 들어갔다. (경찰서 외부에 게이트가 있어 인솔자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팀장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형사팀, 강력팀도 노크맨답게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순조로운 노크 행렬이 이어질 줄 알았지만 급랭탕을 맛보게 되었다. 찾아간 강력팀에서 팀장님 한 분이 이렇게 찾아오면 안 된다고 했다. 잠깐 인사만 드리고 가겠다며 명함을 건넸지만 명함조차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MBN 사옥에 경찰이 막무가내로 들어가 돌아다니면 수상하게 여기지 않겠느냐며 괜한 오해를 사지 말고 경찰서에서 나가라고 했다. 관공서에서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하며, 다음에는 미리 연락을 하고 찾아오겠다고 하니 그렇게라도 오지 말라고 했다.
굉장히 순화해서 표현한 것이다. 당시 내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팀장님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나를 밖으로 내보냈다. 정말 욕설만 하지 않았다. 이제는 어떤 괄시에도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대접을 받으며 기자를 해야 하는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경찰서를 나오다 당직 근무 중인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청과에 근무하고 있는 순경이었다. 입직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서로 막내의 설움을 토로하며 떠들었고, 그 덕에 기분이 조금 풀릴 수 있었다.
혜화서에서는 묵언의 괄시를 받은 적도 있다. 강력팀에 몇 번 찾아갔을 때 봤던 형사였다. 팀장님과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경찰서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했다. 말을 걸었지만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조차 하지 않았고, 건네는 명함도 받지 않았다. 보통 대화를 거절할 때 바쁘다거나 언론 대응을 할 수 없다며 자리를 피하기 마련이었는데 이 분은 표정으로 말을 했다.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괄시를 유독 많이 겪은 동기도 있었다. 전국부 장 기자는 지구대 파티션에 팔을 올려놓았다가 예의가 없다며 팀장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형사팀에 찾아갔다가 특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나오는데 한 형사가 따라 나와 훈계를 했다고도 했다.
“기자 양반, 여기 당신 같은 사람들 오는데 아니니 찾아오지 마세요.”
노원서 급랭탕에서 겪은 것과 비슷하게 이 형사님도 어떤 경우에도 찾아오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든 마냥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이야기만 오고 갈 수 없다. 하지만 마와리를 돌며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괄시를 받아야 했다. 경찰뿐 아니라 취재현장에서 마주한 언론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에게도 괄시를 받아야 했다. 이런 온탕과 냉탕의 반복은 5개월의 마와리가 끝날 때까지 반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