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맞이한 재난 현장, 폭우 속 취재기
2022년 8월 8일 혜북라인 3주 차 출근이었다.
집이 신길동이었기 때문에 혜북라인은 물리적인 거리가 멀었다. 보통 스쿠터를 타고 출근했는데 이날은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이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마와리를 돌며 차를 가지고 출근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전부터 거리가 멀고 무더운 날씨에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힘이 들어 차를 가지고 다닐지 고민했다. 경찰서에 주차가 가능한지 알아봤지만 주차공간이 협소했다. 이날은 강북경찰서로 출근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경찰서 인근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경찰서로 향했다. 비도 맞지 않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출근하니 상쾌했다.
마와리를 차로 돌 수는 없었다. 본서 집착남 덕에 본서 지박령처럼 지내야 하기도 했지만 운전 중에 카톡을 확인하고 답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북서에 도착해 여지없이 마와리를 돌았다. 그사이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졌다. 강북서 흡연구역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선배에게 지시가 내려졌다. 마와리를 멈추고 라인 내 비 피해 상황을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오후 출근이었던 국제부 장 기자와 서울과 경기북부로 나누어 피해 상황을 계속 확인했다.
그러던 중 취재지원 지시가 내려졌다. 폭우로 인해 월계1교 인근 도로가 통제될 예정이라며 현장에 나가 스케치를 따오라고 했다. 현장으로 이동하며 통제 시점을 확인하기 위한 전화 취재를 이어갔다. 수위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와야 통제가 되는데 아직 통제 수위까지는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상류 쪽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며 수위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고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현장에 도착해서 수위를 확인해 보니 통제 수위 직전까지 차올라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려갔다. 빗방울도 잦아들어 거의 내리지 않고 있었다. 뒤이어 도착한 영상취재 선배와 현장 스케치를 마치고 퇴근할 수 있었다.
수습기자들은 큐시트를 받아볼 수 없었다. 저녁 뉴스 모니터를 해보니 이날 폭우 중계(MNG)가 있었다. 중계에 사용할 스케치 영상을 따오는 것이 내가 맡은 일이었다.
차가 강북서 근처에 있으니 다시 강북서로 돌아가야 했다. 길을 건너 버스를 타야 했는데 근처 보건소에 들어가 마감보고를 쓴 뒤 나오니 비가 다시 쏟아졌다. 비바람이 워낙 강해서 그야말로 재난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 하니 빗속을 뚫고 버스에 올랐다. 환승하기 위해 중간에 내렸는데 언덕인데도 갑작스러운 폭우에 물이 차있었다. 발목까지 잠기는 물 높이에 어쩔 수 없이 구두와 양말을 적셔야 했다. 그저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날 신은 구두와 양말은 망가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북서 근처에 도착하니 다시 비가 잦아들었다. 이미 발목까지 빗물에 잠겼고, 비바람 때문에 셔츠와 바지도 다 젖어 있었다. 바로 차에 타기보다는 저녁을 먹고 귀가하기로 했다. 강북서와 공영주차장 사이 ‘착한집밥’이라는 백반집에 들어갔다. 식당 이모님들은 비에 젖은 내 꼴을 보고는 물기라도 털어내라며 수건을 내어 주셨다. 워낙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는 곳이었지만 비바람을 맞고 와서인지 밥이 더 맛있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나왔다. 출발하고 10분 정도 지나니 아예 비가 그쳤다. 조금 전 내가 맞았던 비는 무엇이었나 현타가 왔다. 그래도 까미와 함께하는 퇴근길이라 에어컨 바람으로 옷도 말리고 노래도 들으며 즐겁게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부순환로를 타고 내려와 망원에서 강변북로를 타야 했다. 그런데 망원동에 들어서니 곧 개일 것만 같던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강변북로에 올라서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졌다. 정말 코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라 모든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서행했다.
그저 안전하게 귀가하기만을 바라며 서강대교를 넘어 여의도에 들어갔다. 강변북로에서만큼 빗줄기가 굵진 않았지만 이미 모든 도로에 물이 차올라 찰랑대고 있었다. 대방지하차도를 지나야 하는데 침수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앞섰다.
생각보다 지하차도는 물이 차있지 않아 무난히 지나쳤다. 오히려 지하차도를 나온 뒤가 문제였다. 오르막길이었는데도 워낙 갑작스레 비가 내리니 도로가 잠기기 시작했다. 보라매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차선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더 심각했다. 보라매역에서 집까지 8분 만에 도착했는데 침수가 시작되니 수위는 급격하게 올라왔다. 차선이 보이니 않는 것은 당연했고 옆에 다른 차가 지나가면 창문까지 물이 덮치기도 했다. 이미 침수되어 있는 차도 보였다.
인수한 지 6개월도 안되었는데 이대로 침수차를 만들 수는 없었다. 엔진 과열 경고등이 뜨기 시작했지만 약하게라도 엑셀을 계속 밟았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아파트 주자창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돌아보니 뒤따라오던 차들이 침수되어 빠져나오지 못했다. 간발의 차로 침수를 면했던 것이다.
과열된 엔진을 식히고 집에 들어오니 집 근처 지역에 시간당 130mm의 집중호우가 내렸다고 했다. 정부에서는 다음날 출근시간을 조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부모님과 외할머니께 곧이어 전화가 왔다. 비 피해가 심하다고 하니 내일 출근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걱정되셔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순간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시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캡께서 당장 내일 새벽에 출근할 지원자들을 찾았다.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에 가야 하는 것이 기자라는 직업이었다. 그렇게 수습기자인 나에게 여름 재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