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나선 집 앞 취재와 떡잎마을 방범대
차가 침수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창문을 열어 침수된 곳을 확인했다. 내가 빠져나오기 전보다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차량 수십 대가 침수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옷이 젖는 것을 체념한 채 물속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아직 입봉하기 전이었지만 현장에 나가 영상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속에 들어갈 것을 각오하고 곧바로 현장에 나갔다. 집에서 얼마 나가지 않아 인도까지 물이 차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차체가 높은 차량들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승용차들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헤드라이트가 거의 가려질 정도로 수위가 차올랐는데 운전자는 아직 차량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나마 지대가 높은 위치에서는 사람들이 침수지역 밖으로 차를 밀어냈다.
견인차가 들어와 일부 차량을 끌고 나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들도 도착했지만 침수지역에 들어가지도, 돌아 나가지도 못하는 차량들로 양방향 도로가 막혀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트렁크에 앉아 연거푸 담배만 피우는 시민도 있었다.
비가 점차 잦아들었지만 차오른 빗물은 빠질 기미가 없었다. 물은 빼낸 것은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었다. 이 시민들은 차량들이 침수되기 시작하자 물속에 들어가 차량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배수로가 막혀 물이 빠지지 않자 시민들은 평소 기억하던 배수로를 찾아 이물질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떡잎마을 방범대(?) 형님들의 희생 덕에 뚫린 배수로로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침수되지 않은 차량들은 떡잎마을 방범대의 유도에 따라 우회하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현장에서 지켜보며 여러 영상을 찍었고 곧바로 본서 집착남 선배에게 보고했다. 선배는 고맙다며 영상을 보내주면 철야 근무자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다. 이날 뼈기자 선배도 충무로 인근에서 술을 마시다 상황이 악화되자 긴급 철야근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내가 취재하며 찍은 영상은 뉴스에 쓰이지 못했다. 강남지역 침수피해가 더 심각했고 신림동에서는 반지하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숨지는 참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강남 일대는 승용차가 완전히 잠길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지하철역도 여럿이 침수되어 이수역은 승강장에 물이 가득 차 무정차 통과를 하기도 했다. 동기 단톡방은 여기저기서 제보받은 피해 사진들이 계속 올라왔다.
※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닙니다. 폭우 당시 제보를 받거나 sns에 올라왔던 사진입니다.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회사에서 지시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침수 피해 지역에 취재를 나가야 할 수 있으니 젖어도 상관없는 신발과 옷을 챙겨 출근하라고 했다. 몇 년 동안 정장만 입고 다니던 내게 그런 신발과 옷이 있을 리 없었다.
신발장을 열어보니 전투화가 눈에 띄었다. 이미 예비군도 끝난 민방위였지만 전투화라면 피해 지역에서도 활보하며 취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전투화를 신고 출근길에 나섰다.
집에서 나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밑창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아니라 진짜였다. 예비군이 끝남과 동시에 전투화도 수명을 다한 것이었다. 부랴부랴 집에 들어가 전투화 대신 트레킹화로 갈아 신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