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는 밥도 술도 일이다?
마와리를 시작하며 선배들은 이런저런 미션을 주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요구받은 미션은 경찰과 식사 약속, 술 약속을 잡으라는 것이었다. 정보보고를 올리라는 압박도 이어졌는데 시기와 정도는 라인마다 선배마다 달랐다. 두 번째 라인으로 옮겨간 뒤로는 첫날부터 식사 약속과 정보보고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다.
나는 경찰과 식사 약속을 잘 잡지는 못했다. 영등포라인에서도 단 두 명의 팀장님들과 식사 자리를 했었다. 혜북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강력팀 형님과 몇 차례 식사를 한 것 외에는 별다른 식사 약속을 잡지 못했다. 매번 선배에게 식사 약속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는 모습만 보여야 했다.
동기들은 달랐다. 처음부터 술 약속을 잡아내는 동기도 있었고 꾸준히 식사 약속을 잡는 동기도 있었다. 혜북라인에 같이 있던 국제부 장 기자도 약속을 잘 잡는 편이었다. 장 기자는 함께하자며 나를 식사 자리에 같이 데려가 주었다.
장 기자 덕분에 무임승차를 하며 선배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번은 같이 가기로 한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아침부터 장 기자가 취재지원을 나가게 되어 경비과장님과 둘이 식사를 한 적도 있다. 장 기자가 주선한 자리였는데 혼자 나가니 조금 무안하기도 했다.
자리가 끝나면 식사 중 나눈 대화를 정리하고 정보보고도 같이 만들어 보고해야 했다. 장 기자와 함께했던 자리는 같이 대화 내용을 복기하고 정보보고가 될 만한 이야기도 추려 서로 어떤 보고를 올릴지 논의했다.
선배들의 압박으로 식사 자리, 술자리를 만들어 갔지만 실제로 취재원과 가까워지는데 식사와 술만 한 것이 없었다. 평소 직위나 직급으로 호칭하다가도 술 한잔 들어가면 바로 형 동생이 되었다. 역시 한국 사람은 밥과 술에 진심이었다.
워낙 술자리가 잦다 보니 술자리 때문에 에피소드도 많이 생긴다. 종로라인에 있을 당시 경제부장이 주선한 자리에 불려 갔었다. 어떤 자리인지도 모른 채 뼈기자 선배가 저녁에 시간이 되느냐며 불러들여 충무로에 갔다. 자리에 가니 경제부장과 차장 그리고 기업 홍보팀 사람들이 있었다.
경찰 이외의 사람들과 기자로서 만나는 첫자리였다. 1차에서 충무로 주꾸미불고기를 먹고 2차는 양주를 마시러 갔다. 유독 부장들은 폭탄주라는 명칭을 자주 쓴다. 흔히 말하는 소맥도 소폭이라 부르는데 양폭과 구분하기 위함인가 싶었다. 이날도 부장이 2차는 양폭을 먹자며 자릴 옮겼었다.
양주도 독한데 폭탄주로 먹다 보니 금세 술에 취했다. 2차로 자리가 끝날 줄 알았지만 기자 출신인 홍보팀 직원이 젊은 사람들끼리 간단하게 한 잔 더 하자며 3차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그러던 중 부장이 우리가 있던 자리에 다시 오게 되었고 이 자리가 끝난 뒤 뼈기자와 나는 부장과 4차로 맥주를 또 마셔야 했다.
그렇게 4차까지 하고 나서야 귀가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지하철이 끊기지 않았었다.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자리에 앉았는데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역무원이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열차 운행 종료되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주세요.”
역무원의 말에 부랴부랴 내려 밖으로 나갔다. 아직 술과 잠에서 깨지 못해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역 바깥으로 나가보니 익숙한 바다 내음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내가 내린 곳은 동인천역이었다.
지하철 운행이 끝났으니 택시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데 택시 승강장에도 택시가 보이지 않았고 카카오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서대문에 있는 경찰청으로 출근해야 했는데 점점 위기가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모텔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일찌감치 서울로 돌아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도저히 일찍 일어나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 승강장에 나타난 택시를 타고 귀가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3시가 넘었었다.
결국 다음날 5분 정도 일보가 늦어졌는데 전날 함께 자리를 했던 뼈기자는 혼내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동인천에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뼈기자는 별다른 말없이 9시까지 쉬라고 지시하며 배려해 줬다.
전국부 김 기자는 유독 술자리 에피소드를 몰고 다녔다. 지금은 퇴사한 조 기자와 함께 형사들 회식자리에 갔다가 만취해 보고를 쓰지 못한 김 기자는 조 기자와 보고 내용을 공유했다가 다음날 벌마와리를 돌아야 했다.
쉬고 싶었지만 억지로 동행했던 술자리에서는 정보보고를 만들어가지 못한 김 기자는 선배에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본서 집착남 선배는 당시 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일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논거다. 몇 시간 동안 술자리 하며 정보보고 하나 만들어오지 못한 게 말이 되냐.”
이 말을 들은 김 기자는 서럽다며 하소연을 했다.
선배의 말대로 기자에게는 술을 마시는 것도 일이었다. 취재원과 가까워지고 새로운 정보나 기삿거리를 찾는 게 취재기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저 사람과 술이 좋아 술자리를 자주 가지는 기자들도 있다. 전혀 술을 하지 않지만 좋은 기사를 많이 쓰는 기자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기자들은 일로서 술자리를 자주 가진다. 고작 기자 생활을 찍먹 해본 수준이지만 이때 만들어진 습관 때문에 새로운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나 술자리에서도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부작용으로는 이런 자리에서 정보 거리가 나오면 아직도 정보보고를 만들어 주변 기자들이나 정보관에게 보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