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과의 공통분모를 찾아라
어려서부터 학연, 지연, 혈연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교육을 받았다. 학교 교육에서도 언론에서도 학상 부정적 프레임으로 이런 문화들을 바라봤다. 대학을 다니며 부정적 시각이 조금씩 사라졌다. 취업한 선배들에게 회사 안에서 동문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들끼리는 가까워지기도 좋고 서로 도우며 지내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필요성을 체감하지는 못했다. 연세의료원에 재직할 때 원내에 동문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문이었던 옆 팀 선생님께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모임에 나오라고 했다. 그다지 나가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자리에 나가는 게 귀찮았다. 나를 불러준 선생님께도 굳이 모임에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기자가 되니 상황은 달라졌다. 별거 아닌 공통분모라도 찾아 취재원과 가까워져야 했다. 가장 먼저 주변 지인들을 찾았다. 경찰이 된 친구들을 통해 소개들 받기도, 경찰이 된 지인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대학 동기 중 경찰이 된 형이 있었다. 몇 년 만에 연락해 술자리를 가졌는데 경찰 내부에서 같은 대학 출신 선배들을 소개해 주기로 약속도 했었다.
고향 친구를 동기들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다. 4개의 광역라인 중 강남라인만 가보지 못했는데 고향 친구가 강남라인에 있는 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문전 박대를 당하는 게 일상인 마와리였기에 동기들이 잠시라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올 수 있도록 친구에게 부탁했었다. 전국부 김 기자는 친구를 만나고 온 뒤 친구를 천사님이라 부르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가족 중에는 경찰이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경찰이 서울청에 근무 중인 것을 알게 됐다. 종로라인에서 입봉을 한 뒤였다. 총을 맞고 취재를 나갔는데 당시 인터뷰를 해주신 서울청 계장님이 아버지, 작은아버지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이날 내 기사는 킬 됐지만 타사에서 계장님의 인터뷰가 나가는 것을 보신 아버지가 잘 아는 사이라며 전화를 주셨다. 취재현장에서는 서로 몰라봤지만 나도 어렸을 적 자주 뵈었던 분이었다. 계장님께 전화를 드리니 아버지께 이야기를 들었다며 반가워하셨다. 먼저 밥을 사주시겠다고 하셔서 약속도 잡게 되었다.
이렇게 지인을 통하는 방법이 아니라면 기댈 곳은 학연, 지연뿐이었다. 아쉽게도 경찰 내부에 중앙대 출신이 많지는 않았다. 충북이 고향인 나로서는 동향 출신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강남라인에서 동향 선배들을 만나 경찰서를 휘젓고 다니는 국제부(사회부 진) 장 기자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마와리를 돌며 고향이 어디인지 물었다. 물론 처음 만나 인사하는 자리면 고향과 출신학교를 먼저 물어오는 경찰도 많았다. 그러다 혜북라인에서 처음으로 동향 분을 뵈었다. 전화를 돌리다 뵙게 된 계장님은 어디 가서 충북 출신을 만나기 힘든데 반갑다며 휴대전화에도 나를 동향 후배로 저장해 주셨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계장님은 찾아갈 때마다 직접 내린 커피를 내어 주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충북 출신 경찰들이 고위직에도 있고 가까운 경찰서에도 2명 정도 있다며 나중에 소개를 해주겠다고도 하셨다.
이 중 한 분은 종로라인으로 옮겨가 마와리를 돌다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같은 중학교 선배셨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는 한 학년에 반이 고작 2개밖에 안 되는 정말 작은 시골 중학교였다. 그런 학교의 선배를 타지에서 만나니 너무나도 반가웠다. 계장님과 중학교 선배님은 기자를 그만둔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안부 인사를 드리며 연락하고 지낸다.
혜북라인 마지막 주차에는 본서 집착남 선배가 서울이 아닌 경기북부 경찰서 마와리를 돌아보라고 했다. 다른 날들은 혜화, 노원라인 경찰서에서 식사 약속들이 잡혀 있어 단 하루만 고양경찰서를 갔었다.
고양서에서 처음 만난 과장님과도 고향 이야기를 했는데 예전에는 고양서가 충북 출신들이 많았다고 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충북 출신이 아니면 고양서에 근무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기자를 했으면 고양서에서 취재하기가 편했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고양서를 갔던 날은 오후 출근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고양서에만 마와리를 돌기가 힘들었다. 경기 북부이다 보니 지파 간 거리도 멀었다. 그럴 바엔 일산동부서, 일산서부서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민트를 타고 출근했기에 두 곳 모두 그리 멀지 않았다.
두 곳에서 당직 근무자들을 만나니 어느덧 퇴근할 시간이었다. 보고를 정리해서 올렸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본서 집착남 선배가 읽지 않았다. 취재원과 술자리 중인가 싶어 15분 정도 지났을 때 전화를 했다. 선배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냥 퇴근해도 될지 고민하며 민트를 주차해 둔 곳으로 갔는데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아... 인식 진짜 미안해. 진짜 미안해. 진짜 미안해. 깜빡 잠들어서 못 봤다. 퇴근하고 있지?”
이미 시계는 10시 30분에 가까워져 갔지만 나는 아직 일산동부서 앞에서 민트와 대기 중이었다. 선배는 거듭 사과를 하며 보고는 확인해 보고 피드백을 줄 테니 일단 퇴근부터 하라고 했다. 그리고 선배는 미안하다며 기프티콘을 보내고 다음날 일찍 퇴근시켜 줬다.
그렇게 마와리 두 번째 라인 생활도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