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인지한 사건, 입봉에 다가가다
언론사에는 수습기자가 단독을 가져와야 입봉을 시켜주는 전통이 있다. 여전히 이런 문화가 남아 있는 곳도, 아닌 곳도 있지만 MBN은 아직 남아 있었다. 모 선배는 수습 기간이 끝나고 부서 배치도 받았지만 입봉을 하지 못해 선배들이 단독을 물어다 주려 애를 썼다는 일화도 있다.
혜북라인에 머무는 기간은 4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국제부(사회부 진) 장 기자는 혜북라인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단독을 가져왔었다. 하지만 아직 시기가 이르다며 입봉 하지 못했다. 4주가 끝나가던 시점에 새로운 라인 배치가 발표됐다. 세 번째 라인에 고정되어 수습 기간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고, 세 번째 라인에 가면 단독을 가져오는 대로 입봉을 시켜준다고 했다.
아직 사건을 가져올 자신이 없었지만 빨리 입봉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마와리를 돌면 사건을 가져오라는 미션이 주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지시를 받지 않았다. 정보보고를 못해 선배에게 혼나는 날에도 선배들은 사건을 가져오라고는 하지 않느냐며 정보보고를 꼭 만들어오라고 했었다. (내가 퇴사하고 들어온 수습들은 사건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혜북라인 출근이 이틀 남은 날이었다. 그렇게 단독을 물어와야 한다는 내심의 압박감을 가지고 출근을 하고 있었다. 민트를 타고 원효대교를 건너고 있었는데 뭔가에 맞은 느낌이 들었고 손에는 물컹한 것이 묻어 있었다. 새똥이었다.
원효대교 위에는 항상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는데 아무래도 갈매기의 배설물인 것 같았다. 다리를 건너고 스쿠터를 세운 뒤 확인해 보니 옷에도 새똥이 여러 군데 튀어 있었다. 여름이라 셔츠에 슬랙스만 입고 다녔는데 흰 셔츠에 그대로 새똥이 묻은 것이었다. 곧바로 편의점에서 물티슈를 사서 닦았지만 옷에는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출근을 해야 하니 다시 시동을 걸고 달렸다. 경찰서에 도착해 동기들에게 사진을 보내며 새똥에 맞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대부분 힘내라는 반응이었지만 영상취재 안 기자는 좋은 일이 생기겠다고 말했다. 그러곤 다들 힘들다며 퇴사하고 싶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그리고 열흘 뒤 막내 조 기자도 한강에서 새똥을 맞았다. 평생 살며 처음 맞아본 새똥인데 이렇게 쉽게 맞을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동기들과 잠시 카톡방에서 수다를 떨다가 마와리를 돌기 시작했다. 112 상황실장을 만나러 갔는데 새똥 이야기를 듣곤 바로 가서 복권을 사라고 했다. 새똥을 맞는 일을 사람들이 길조로 여기는구나 싶었다.
정말 길조였는지 이날 처음으로 사건을 인지했다. 그동안 마와리를 돌며 무인점포 절도 사건들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마침 무인점포 절도 건을 인지하게 됐다. 사건만 단독으로 나가기는 힘들어도 기획성으로 기사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건 장소와 시간대를 특정해 퇴근길에 들러 해당 점포나 주변에 cctv가 있는지 확인하고 점포 관리인의 연락처도 확보했다. 전국 일주 같은 취재지원을 다닌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날은 촉법소년의 오토바이 절도 사건, 지명수배자의 아이스크림 절도 사건도 인지하게 되었는데 두 건은 취재 내용이 다소 부족해 일단 정보보고로 올렸다. 무인점포 절도 사건은 주말이 지나면 입봉 할 수 있기 때문에 사건을 따로 보고하지 않았다. 처음 사건을 물어온 날이었는데 세 건이나 인지할 수 있었다. 출근할 때 맞은 새똥이 정말 입봉의 징조인가 생각하며 기분 좋게 퇴근했다.
그리고 다음날 혜북라인 평일 마지막 근무였기 때문에 그동안 반겨주시던 팀장님들과 인사하는 정도로 가볍게 마와리를 돌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내 입봉작이 된 사건을 인지하게 됐다. 자세한 과정은 취재원 보호를 위해 밝힐 수 없지만 이렇게도 단독을 물어가는구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입봉작도, 그다음으로 가져간 단독도 정말 우연히 물어갈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물어간 단독은 취재원과 보도 일정을 조율하다가 이태원 참사가 터지고 바로 부서를 옮겨가며 내가 보도할 수는 없었다. 취재원에게도 미안했지만 결국 뼈기자 선배가 내가 퇴사한 뒤 기사를 써줬다.
입봉작은 코인 사기 사건이었다. 피해 금액도 크고 피해자도 많아 사건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이 건은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바로 본서 집착남 선배에게 보고했다. 선배는 위에 보고하지 않을 테니 마와리를 돌지 말고 사건 취재를 시작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다음 주부터 입봉을 시킨다고 했으니 다음 라인에 가서 보강 취재한 내용으로 보고를 하라고 했다. 어떤 부분이 추가로 취재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려줬다.
그렇게 경찰서 민원실에서 취재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있는데 옆 대기실에서 코인 사기 관련 이야기가 들렸다. 내가 받은 사건 관련인이 아닐까 싶었다. 민원인 대기실에서는 타이밍을 놓쳐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저녁을 먹고 경찰서로 돌아가는 길에 그 사람들과 마주쳤다.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하며 말을 걸고 명함을 건넸는데 아니라며 완강히 부인했다. 변호사가 함께 있었는데 ‘서로 윈윈하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이 누구인지 몰랐는데 기사가 나간 뒤에야 그들이 피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 더 사건에 대해 취재가 되었던 상황이라면 밑대기라도 시도했을 수 있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실 피의자를 직접 마주한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언론진흥재단 교육을 마치고 처음 복귀한 주말 근무 때도 현장에 나가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차량 블랙박스들을 찾아보다 한 차주와 마주쳤다. 피의자가 체포되어 조사 중인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조사를 마치고 귀가해 있던 것이었다. 사건에 대해 물으며 블랙박스 열람을 요청했을 때 유난히 적대적이고 화를 내서 이상하다 싶기는 했었다.
그렇게 점점 입봉에 다가가며 혜북라인 마지막 평일 근무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