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기자도, 경찰도 당하는 민생범죄
영등포라인 막바지, 이 선배는 매일 정보보고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기본적으로 정보도 기브 앤 테이크다.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나는 딱히 가진 정보가 그다지 없었다.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요령도 없었다.
혜북라인에서는 시작부터 1, 2진 선배들 모두 매일 정보보고 하나씩은 가져오라며 엄포를 놓았다. 실제로 보고를 올려도 정보보고가 왜 이렇게 짧은지, 더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지, 없다면 왜 물어보지 않았는지 등 선배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그 덕에 하루하루 정보보고를 만들어내는 요령이 생겼다. 특히 본서 집착남 선배는 마감보고를 하면 이런저런 피드백을 해주며 본인이 가진 정보들을 풀어주기도 했다. 선배는 가진 정보가 있어야 새로운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며 지인들을 통해 증권가 찌라시라도 받아보라고 했다.
혜북라인에서 일주일이 지난 뒤에는 정보보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2시간 마와리를 돌면 정보보고 3개를 올리기도 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유의미한 정보보고는 몇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정보보고를 만들어내는 데 익숙해져 갔다.
정보보고에는 아직 기사화되지 않았거나 기사화가 되기는 어려운 사건들이나 타사 동향과 관련된 내용들도 포함된다. 혜북라인에서 올린 정보보고에 올린 사건들에는 유독 중고 사기, 보이스피싱 관련 내용들이 많았다.
한 번은 혜화서 마와리를 돌다가 타사 기자가 중고거래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건을 받기 전에 미리 송금을 해서 피해를 당한 경우였다. 경찰에 사건 접수를 한 뒤 다행히 피의자를 특정하고 송금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경찰은 선불이라는 거래 관행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고 했다. 사회부 기자나 경찰이라고 해서 피해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며 항상 의심하라고 했다. 거래 관행을 깰 수 있도록 기사를 써달라는 말도 남겼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사회부에서 경찰서를 다니며 많은 사건들을 접한 기자였는데도 너무나 쉽게 중고거래 사기에 당했다. 다른 경찰서를 다니면서도 현직 경찰이 중고거래 사기를 당한 경우도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범죄가 사회 전반에 퍼져있고, 수법도 진화해 가는 것 같아 씁쓸했다.
보이스피싱은 중고거래보다 피해 금액도 크고 심각했다. 한 강력팀장님은 워낙 보이스피싱 사건을 많이 보다 보니 가족들에게 항상 주의하도록 예방법을 전파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보이스피싱에 당했다며 연락이 왔다고 했다. 딸을 사칭해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잃어버렸다고 연락했고, 신분증과 카드 사진을 찍어 보내며 3천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부모를 노린 보이스피싱 범죄가 가장 취약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등산을 갔다가 딸이 납치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신고를 받아 출동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등산에 동행했던 친구가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버지는 친구의 만류에도 돈을 보내려고 했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팀장님은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부모들은 혼이 빠질 정도이기 때문에 경찰이 출동해도 말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외에도 보이스피싱으로 전 재산을 날린 할머니 등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악용하는 보이스피싱이 정말 악질적인 범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법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었다. 한 번은 경찰서 민원인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신고하러 온 피해자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후에 형사과에 가서 다시 물어보니 전형적인 대면 편취형 보이스피싱 사건이라고 했다. 검찰을 사칭했는데 특이한 점은 가상화폐를 미끼로 삼았다고 했다. 보유하고 있는 가상화폐가 범죄에 활용되었다며 피해자에게 현금을 가로챘다고 한다.
중고거래 사기도, 보이스피싱도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범죄였다. 현직 판사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범행 수법들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마와리를 돌며 경찰들과 이런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하나같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피해의 심각성은 높아지는데도 정부에서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는 중고거래 사기나 보이스피싱 기사도 자주 보도되지 않는다. 워낙 빈번히 발생하다 보니 언론사들도 신종 수법이 드러나는 등 사건에 특이점이 없다면 기사를 내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린 내린 민생범죄라는 방증이다. 정부도 사회도 이런 심각성을 깨닫고 적극적인 예방과 범죄 근절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