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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Aug 28.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22. 가장 찬란했던 초여름 아침, 1978


새벽 6시 아버지가 나와 남동생을 깨운다.

눈을 비비며 장화를 신고 뒷산에 오른다.


아버지는 밭둑 비탈에서 구렁이를 쫒으며

애호박을 따시고

어머니는 부엌 밖 화덕에 쌀을 안친다.


중1, 초5 형제는 이슬을 헤치며

청자, 감, 싸리버섯을 따서

한 소쿠리 담아 내려오면

누나 여동생의 이부자리 정리와

방 청소도 끝난다.

돌 사진


쇠죽을 끓여 아버지가 외양간에 가면

그 앞 화덕 밥 뜸을 들여야 한다.

부엌에서 우리 아들이 적당히 잔불 피워

뜸 들이는 건 세계 최고라 칭찬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애호박과 버섯 재료를 된장찌개로 끓여내고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하면

마을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우리 집 안방에 여섯 식구가 둘러앉는다.


고봉밥 아버지 밥그릇 뚜껑에는 날계란이

한 켠에는 모닥불과 들기름에 구운 김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가난했지만 별 고민거리 없던

자급자족의 시절.


지나고 나니 이 일상의 찰나가 우리 집

온 식구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 같다.

그래서 더욱 눈물 날 만큼 빛난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이 햇빛을

응시하다 눈물이 맺히는 것처럼.

그로부터 고작 16년 더 살다 가신 아버지

고생만 하다 간 엄마.


아버지 어머니 큰아들 타향에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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