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여행기
22. 가장 찬란했던 초여름 아침, 1978
새벽 6시 아버지가 나와 남동생을 깨운다.
눈을 비비며 장화를 신고 뒷산에 오른다.
아버지는 밭둑 비탈에서 구렁이를 쫒으며
애호박을 따시고
어머니는 부엌 밖 화덕에 쌀을 안친다.
중1, 초5 형제는 이슬을 헤치며
청자, 감, 싸리버섯을 따서
한 소쿠리 담아 내려오면
누나 여동생의 이부자리 정리와
방 청소도 끝난다.
쇠죽을 끓여 아버지가 외양간에 가면
그 앞 화덕 밥 뜸을 들여야 한다.
부엌에서 우리 아들이 적당히 잔불 피워
뜸 들이는 건 세계 최고라 칭찬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애호박과 버섯 재료를 된장찌개로 끓여내고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하면
마을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우리 집 안방에 여섯 식구가 둘러앉는다.
고봉밥 아버지 밥그릇 뚜껑에는 날계란이
한 켠에는 모닥불과 들기름에 구운 김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가난했지만 별 고민거리 없던
자급자족의 시절.
지나고 나니 이 일상의 찰나가 우리 집
온 식구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 같다.
그래서 더욱 눈물 날 만큼 빛난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이 햇빛을
응시하다 눈물이 맺히는 것처럼.
그로부터 고작 16년 더 살다 가신 아버지
고생만 하다 간 엄마.
아버지 어머니 큰아들 타향에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