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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Sep 19.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35. 나의 독서 편력


1) 잡식성 독서습관     

공부는 반에서 10등 정도 어중간하다.

운동은 너무 못해 열외.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책 읽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남의 집에 가면

책꽂이를 뒤지는 것이 습성이었다.

사람들은 방을 어지럽히는 것은 싫어했지만

어린 소년이 책을 빼 읽는 것에는 관대했다.


마을 사람들, 친척과 친구 집 책꽂이 중

내 손을 거치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였다.


책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했다.

마을회관에 <새마을> 잡지 마저도 탐독했다.

특히 그 잡지는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좋았다.


당시 소년 소녀들에게는 전집류가 유행했는데

집에서는 단 한 번도

전집을 사 준 적이 없어서

친척집에서 세계명작,

그리스 로마 신화, 소설가 시리즈를 빌려다

전집 한 권 한 권 격파해

모두 완독 하는 재미도 들였더랬다.


많이 읽다 보니 속독법이 생겨

지금도 책은 단숨에 읽는다.


2) 인생을 바꾼 한국일보, 1975

동네 이발소는 사랑방이었다.

머리를 깎으러 가면

국민학생들은

바리깡으로 사정없이 밀고

중학생들은 이 부 머리라 하여

앞머리 3센티 정도를 남겨 주셨다.


여름철에는 머리를 깎고 나면

빨랫비누와 수건을 주고

개울에 가서 머리 감고 가라고 했다.     


그 이발소에서 구독하던 신문이 한국일보였다.

70년대 장 씨들이 만든 한국일보는

조선일보보다 잘 나갔었다.     


섹시한 <선데이 서울>, <주간 한국>을 보고 싶은데

차마 국민학생이 성인잡지를 볼 수 없으니

세로 쓰기 한문 투성이의 신문을 볼 수밖에.


그 신문에 실린 시사만화 두꺼비와

블론디 미국 만화를 보고

신문과 만화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인생 진로를 시사만화로 정하게 된 것 같다.

왜냐하면 그 후로도 신문은 늘 내 손에 있었으니까.     


무엇이든 어린 날 경험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나른한 주말 오후 이발소에서의 신문을 샅샅이 훑던

주근깨 투성이 까까머리 소년이 나였음을.

     

3) 국경의 갈가마귀, 1982

만화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시내 만화가게는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때만 하더라도 만화방은 영세했고

어둡고 부정적 이미지인 데다

선생들도 가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할 정도였다.     


나중에 만화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될지 몰랐으되

공부해 보니 우리나라 독점 업체가

저질 만화를 양산하던 시기라

그 선생님을 탓할 처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암튼 범생이 고지식이었던 내가  

만화 취미만큼은 버리지 못했나 보다.


열심히(?) 만화를 본 덕분에

이미 중학교쯤에는 어느 정도

마니아 수준이 되어 있었다.     

시시한 명랑만화나 같잖은 무협만화 보다

작품성 있는 만화를 고르게 되었다.


그때 접한 것이 이현세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국경의 갈가마귀>이다.

아이들 상대의 유치한 스토리와

단순한 그림체가 아닌

터치가 거칠지만 아우라가 넘치던 만화였다.

마초 이현세의 스타탄생 전야제같은,

훌륭한 만화였다.

나는 무엇에 홀린듯

단숨에 읽었다.


     

이미지 출처: 쎄미의 해피닝 하우스,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근대 시기,  국경에서 자란 소년이

가족의 복수를 위해 칼잡이가 되어

중국, 일본을 넘나드는 스펙터클한 스토리였다.     

그때 극화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그로부터 40년 후 인터넷 중고사이트에서

그 책을 보자마자 질러 버렸다.

무려 70만 원.

하지만 초판본이 아니라서 실망했을지언정

어떠랴, 내 추억을 저당 잡힌 만화인데...          


4) 이문열 키드, 1983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고 3 때 시내 친구 집에서 처음 이문열을 만났다.


아마 <젊은 날의 초상>이란 책이었을 것이다.

이후 <사람의 아들>까지 접하면서

나도 이문열 키드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어찌나 문학소년이었던지 대학도

국문과를 가고 싶었다.

유려한 글솜씨, 영화를 보는 듯한 스토리텔링 능력.

이문열은 이야기꾼으로서 훌륭했다.

     

우익 꼰대다운 그의 정치적 망발 때문에

결국 그의 책을 버리긴 했지만

적어도 <사람의 아들>만큼은 못 버리겠어서

아직도 갖고 있다.


정치과잉의 시대에도

못 버리겠다, 그 시절 소년의 감동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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