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꿇다
결국 엄마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분명 아마도 종합병원에 계속 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모성애를 쥐어짜며 자식들에게 짐을 덜어주고픈 마음이 발동을 했을 테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적응해 갈 뿐이었을 것이다.
자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분명 하나 밖에 없는 귀중한 엄마를 종합병원에 계속 있게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늘어나는 병원비에, 각박한 현실에 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가슴쓰리고 아팠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마치 엄마가 “나도 데려가!”라고 절규하는 것처럼 들렸다. 가수 이적의 <거짓말> 가사가 머릿속에서 맴맴 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내겐 잘못이 없다고 했잖아 나는 좋은 사람이라 했잖아 상처까지 안아준다 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다시 나는 홀로 남겨진 거고 모든 추억은 버리는 거고 역시 나는 자격이 없는 거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우우~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우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우우~ 우우우~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우우~ 우우우~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죄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버스를 타고 거의 매일같이 요양병원을 찾아갔다. 효녀라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 위한, 어쩌면 이기심에서 발동한 나를 위한 처절한 행동이었는지 모른다. 엄마를 버린 게 아니라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몸부림치며 집과 병원을 오고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본격적으로 치매 양상이 깊어만 갔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은 치매 양상이 극에 달했다. 결국 본인 배로 낳은 자녀들 외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래도 20여 년을 같이 살아온 막내 사위만큼은 신기하게도 알아보았다. 잘 해드리진 못했어도 같이 산 세월이 엄마의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었나 보다…
분명 엄마가 아는 사람인데도 전혀 처음 본 사람처럼 “누구셔?’하며 생뚱 맞은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막내 사위를 볼 때는
“○○아, ○○아~”하면서 다정하게 부르곤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위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너무 감사했다.
치매 기운이 심할 때는 병원인지 집인지 착각을 할 때도 있었다.
“얘들아, 밥 먹고 가!”
“엄마, 여기 밥이 어딨어?”
“지금 하면 돼!”
“밥을 어떻게 해?”
“저기~ 연탄 100장 들여 놓았어. 빨리 밥할 테니 먹고 가!”
엄마에게 연탄 100장은 살아오는 내내 안정감이었을 것이고, 그 연탄으로 가족들의 평안을 지켜주는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희미해져가는 모성애를 부여잡고 힘겹고도 고단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내비치는 것만 같아 보였다. 그 처절함에 목이 메였다.
어떤 날은 기분이 아주 좋은지 병실이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러 댄다.
♪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병실 식구들이 “잘한다! 잘한다!”하면서 박수를 치면 엄마는 더 신이 나서 아주 큰소리로 쩌렁쩌렁 노래를 불렀다.
참 신기한 일이다.
다른 것들은 많이 잊었으면서 노래 가사는 거의 틀리지 않고 부르는 엄마가 정말 신기했다.
어디서나 잘 어울리고 잘 적응하는 우리 엄마.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치열하고 처절했던 엄마의 삶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절절히 아팠다. 죄스러운 마음과 함께…
*표지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