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병원 생활
벌써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이제 엄마는 병원 생활에 아주 익숙하다.
걷지는 못하지만 침대에 앉아 간병인에게 호령호령을 한다.
때론 숨이 차 힘들어할 때도 있지만 살만하면 병실이 떠내려가라 노래까지 부른다.
♪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 ♪
다른 환자들의 눈치도 보이련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멱따는 소리로 끝까지 부른다. 그러면 병실의 환자들이 “잘하신다!!!”라고 박수를 치며 추켜 세워준다. 분명 나이가 많다고 예의 차원에서 하는 소리일 텐데... 엄마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약간 정신줄을 놓은 것인지... 거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곧이어 엄마는 “또 하나 부를까요?”라고 묻는다. 이미 대답은 엄마가 정해놓았기 때문에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 곧이어 엄마는 또 노래를 부른다. 어떤 때는 침대에 앉아 노래를 부르다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도 한다. 참... 흥이 많은 줄은 알고 있지만 나랑 너무나 다른 엄마를 보면서 생경하기까지 하다. 그럴 때면 나는 슬그머니 병실 밖으로 나가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숨어 버린다. 장사를 해서 그런지 엄마의 목소리는 걸걸하면서도 아주 우렁차다. 그런 엄마의 목소리를 피하려면 아주 먼 복도 저 끝으로 가 멍을 때려야만 했다. 나도 참... 옆에서 박수도 쳐 주면서 기를 살려주면 어디가 덧나는지... 참, 못된 딸이다.
민망하기도 하고 때론 창피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좋다고 하니 그걸로 되었다.
더구나 종합병원에서 재활의학과 과장으로 일하는 6촌 시아주버니가 병실이 꽉 차도록 젊은 의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나면 엄마의 어깨는 하늘을 모르고 올라간다. 엄마의 진료과는 분명 심장내과이지만 전혀 상관없는 재활의학과 의사 선생님들이 하루가 멀다 않고 나타났다. 분명 재활의학과 과장인 6촌 시아주버니의 명령 하달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드나드는 거였겠지만, 그래도 손주 뻘의 젊은 의사 선생님들이 하루가 멀다 않고 나타나 엄마의 말벗이 돼 주기도 하고 재활 치료를 해 주기도 했다. 하다 못해 발톱 무좀까지 치료를 해 줄 때도 있었다. 그러니 엄마의 어깨는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엄마의 병원 생활은 마치 병원에 소풍을 온 아이처럼 마냥 즐거워 보였다.
옆에서 간병사가 착 달라붙어 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고, 자녀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돌아가며 엄마를 보러 오니 내가 생각해 봐도 몸은 아프지만 아마도 마음은 맑음, 쾌청,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나를 포함한 형제들이었다.
늘어나는 병원비에 간병인비, 간식비 등등… 하루하루 숨 가쁘고 벅찬 일이었다.
그나마 형제들이 있어 비용을 나눈다고 하지만 월급쟁이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병원비가 부담된다느니, 병원을 옮기자니...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느 날 재활의학과 과장인 6촌 시아주버니가 보다 못했는지 내게
“이제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으니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괜찮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러나 엄마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두들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치 소풍 온 것처럼 해맑은 엄마의 미소에 찬물을 끼였는 듯한... 이렇게까지밖에 못 해주는 내가 너무 초라하고... 미안하고... 엄마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짓눌러댔다. 참, 이렇게 해도 답이 없고 저렇게 해도 답이 없고...
아무말 하지 못하고 하루이틀 눈치만 보았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 가혹했다.
엄마에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 가며 요양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고백했다. 마치 자식에게 좀 더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은데 현실이 따라와 주지 않는 비참함, 결국 그 현실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마 엄마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음을...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애써 감추려는 듯한 표정에 드러나지 않는 엄마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나의 착각일까???
* 표지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