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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럴 수도 있지.

- 인정 - < Life 레시피 >

by 이숙재

샤워를 하려고 물을 틀었다가 순간 깜짝 놀랐다.

“아이, 뜨거워!!!”

왠지 아침부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순간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이그... 이 더운 날 더운물로 샤워를 하다니 ㅜㅜㅜ.'

‘정말... 이해하기 힘들어...’

무더운 여름날, 더운물로 샤워를 하는 남편이 좀 이해는 안 가지만, 본인은 찬물로 샤워를 못한다고 하니... 하긴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이해가 안 갈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겠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때는... 이해할 수 없을 때는 그냥 패스~~~.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일이 이야기하자면 정~~~ 말 입이 아플 정도다 ㅎㅎㅎ.


남편은 잠잘 때도 속옷을 입고 그 위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잔다.

“나는 이렇게 입고 안 자면 추워~~~”

“춥다고?!?!!! 정말!!!”

예전 같으면 “정말? 정말? 제정신이야!!!”라고 통박을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단연 간 남자라는 남편과 살면서 남자들도 상처받으면 삐진다는 사실을 터득했고, 그 결과 나는 속으로만 ‘이 사람 뭐지?!?!!!’라는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남편은 나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다.

그래서 잠을 잘 때도 나와는 온도 차가 많이 나는 편이다. 그런데 신혼 때부터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습관으로 한동안 여름이건 겨울이건 한 이불을 덮고 잤다.

겨울은 그나마 괜찮은데 여름에는 두 사람의 온도로 이불속이 마치 한증막과도 같았다.

추위에 민감한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따로 덮고 자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남편이 상처받을 생각에 한동안 말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그런데,


드. 디. 어.

마. 침. 내.


이불을 따로 덮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오고 말았다.

그것도 다름 아닌 추운 겨울에 ㅎ.

자다가 하도 추워서 눈을 떠보니 남편이 이불을 똘똘 말고 옆으로 누워 자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허허벌판에서 벌벌 떨든 말든 상관없이 ZZZ... ZZZ...

순간 열 딱지가 나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의 엉덩이를 냅다 쳤다. 그러고는 마치 애착 이불처럼 온몸에 휘감고 자던 이불을 휙~ 낚아챘다. 감정이 잔뜩 실린 소심한 복수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확~!!!

“어, 왜 그래?”

남편은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듯 순간 일어나 멍~하니 앉았다.

순간 그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래도 차분히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남편은 잠에 취해 듣는 둥 마는 둥,

“어... 그랬어... 미안해 ㅠㅠㅠ...”라고.

남편의 사과가 흡족하진 않았지만, 내가 너무 했나 싶은 생각에 슬그머니 누웠다.

남편은 내게 이불을 덮어 주면서 “어서, 자!”라고 말하더니 이내 곧 잠이 들고 말았다.

‘별 일도 아닌데... 참, 나도...’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쓱해진 나도 다시 잠을 청했다.


그다음 날,


드. 디. 어.

마. 침. 내.


우리는 <이불 따로 덮기 협정서>에 도장을 쾅! 쾅! 쾅! 찍었다 ㅎㅎㅎ.

살다 보니 남편과 나는 비슷한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참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남편뿐이겠는가!

나와는 다른 남편을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 보겠다고 바득바득 기를 썼지만, 결국 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ㅠㅠㅠ...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나를 달래는 것이다.

그러면 나 스스로 상처를 안 받게 되어 너~~~무 좋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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