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 일기 2 >
구약 성경 예레미야 17장 11절에는 <자고새>라는 새 이름이 나온다. 자고새는 ‘소리를 내어 우는 새’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생김새가 메추라기와 비슷하여 <산메추라기>로 불리기도 한다. <자고새>는 주로 레바논 산지, 수리야 광야, 엔게디 부근에서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자고새>가 엄청 많은 알을 품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고새>가 다른 새들의 알을 훔쳐다 품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고 한다. 한 마리가 낳은 알이라고 하기에는 자고새가 품고 있는 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황당하고도 슬픈 사연이 있다. 자고새가 둥지에서 품고 있는 많은 알 중에는 뻐꾸기가 몰래 가져다 놓은 알도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둥지에 있는 알들을 자고새는 정성껏 품어 부화를 시킨다. 문제는 새끼 뻐꾸기는 새끼 자고새들보다 먼저 부화하는 속성이 있는데, 알에서 빨리 깨어난 새끼 뻐꾸기는 본능적으로 둥지에 있는 다른 알들을 밖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체의 가장 밑바닥에는 ‘자기애(自己愛)’가 꿈틀대는 것이 본능이라지만 그래도... 참ㄷㄷㄷ...).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고새는 새끼 뻐꾸기가 자기 새끼인 줄 알고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먹이며 애지중지 그 새끼를 키워낸다.
과연 그 새끼 뻐꾸기는 자라서 어떻게 될까?
적어도 새끼 뻐꾸기가 경우가 있다면 비록 자기 어미가 아니더라도 은혜를 갚아야 할 텐데(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테지만 ㅠ)... 그건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 ㅠ...
다 자란 뻐꾸기는 그토록 자기를 애지중지하며 키운 자고새 곁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쩍 떠나고 만다. 결국 멀리서 들리는 어미 뻐꾸기 소리를 듣고는 본능적으로 어미를 찾아간다고 한다.
새끼 뻐꾸기가 떠난 빈 둥지를 보며 자고새는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자연의 이치로만 생각한다면 자고새 입장에서도 그리 억울해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인간 세계에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억울하고 분하다 못해 배신감마저 들 텐데ㅠㅠㅠ.
하나님께서는 이 <자고새>를 빗대어 우리 네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예레미야 17장 11절)
그토록 애를 쓰며 잘 키워낸 자고새의 노고가 하루아침에 다 헛수고가 되고 만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다.
갱년기가 오면서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자괴감에 빠져 한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때 주님께서 어김없이 찾아오셔서 허망함의 늪에 빠진 나를 위로해 주시고 어루만져 주셨다. 예배 속에서, 말씀 속에서, 기도 속에서, 찬양 속에서 나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시며 감싸 안아 주셨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인생이라는 것이 나만 아니라 모두 다 힘들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 나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생각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희망이 꿈틀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가 품은 알이 누구 알인지도 모르고 헛된 것에 매달려 헛수고만 하는 <자고새>를 보면서 나의 삶 또한 헛된 것에 매달리고 있진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결국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전도서 1장 2절)”라고 고백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복된 삶이라 말한 것처럼, 믿음의 자녀로 세상의 헛된 욕심에 매달려 살고 있진 않는지 늘 돌아볼 일이다.
https://youtu.be/Y0Uiss0-ukc?list=RDY0Uiss0-ukc
*표지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