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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Mar 25. 2024

반숙의 timing

예민하게, 민첩하게, 세심하게  < Life 레시피 >

우리 가족은 아침에 삶은 달걀 하나를 먹는 걸 좋아한다. 그중에 완숙보다는 반숙을 더 좋아하고, 따뜻할 때 먹는 걸 더 좋아한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인터넷에서 본 대로 약 15분 정도 삶았는데, 그 15분이라는 시간은 달걀을 완숙 상태로 삶을 때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뭐, 완숙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만, 시간을 잘못 체크하는 바람에 반숙 상태의 달걀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질퍽한 노른자의 상태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아… 망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버리기 아까워 일단 입에 넣고 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는 거다!!!

그동안 맛보지 못한 달걀의 부드러움이 혀를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와아! 이거 너~~~ 무 맛있는데!!!’


그 뒤로, 나는 달걀이 가장 맛있는 반숙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어느 블로그에서 가르쳐 준 대로 냄비에 물과 달걀을 넣고, 물이 끓으면 6분 있다가 건지고 있다.

그런데, 이 6분이라는 시간이 꽤나 까탈스럽다. 


냄비에 물과 달걀을 넣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그. 때, 

바.로,

곧,


핸드폰의 알람을 6분으로 맞춰야 한다(이때는 다른 어떤 것에도 정신을 팔리면 안 된다. 예를 들면, 잠깐 물을 마신다 거나 잠깐 핸드폰을 본다 거나 등등…).

“에… 뭐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해야 해!”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달걀을 최상의 반숙 상태로 만드는 데 걸리는 몇 초를 우습게 보다 간 맛있음을 포기해야 한다. 그걸 무시했다가 늘 실패했기 때문에 그 몇 초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달걀을 펄펄 끓는 물에서 건지기 위한 집게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띠링 띠링 띠링…”


알람이 울리면, 그 즉시 집게를 이용해 달걀을 꺼내고, 그 즉시 찬물에 샤워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잠시 찬물에 담가놓은 뒤, 달걀 껍데기를 까야한다. 달걀 껍데기를 언제 까야할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달걀이 따뜻할 때 물속에서 재빠르게 깐다. 왜냐하면 차게 식은 달걀보다는 따뜻한 달걀이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아 참, 가스 불은 달걀을 찬물에 담가 놓은 뒤 끈다. 이건 어디까지나 달걀의 예민함에 대한 나의 예민함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불을 먼저 끄고 끓는 물에서 달걀을 꺼내 찬물에 샤워해도 괜찮겠지만 극도로 예민한 달걀의 반숙 상태를 얻기 위한 나만의 예의(?)가 아닐까 한다. 


알람이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댄다 해도 일단은 무시하고, 달걀을 끓는 물에서 건져 찬물에 샤워시켜 놓은 뒤에 끈다. 좀 시끄러워도 최상의 반숙 상태를 얻기 위해서는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달걀의 반숙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 몇 초도 딴청을 부려서는 안 된다. 먼저 알람을 끄고, 불을 끄고, 집게를 찾고, 달걀을 꺼내면 내가 원하는 달걀의 반숙을 얻어낼 수가 없다 ㅠ. 마치 첩보 영화에 나오는 킬러들의 민첩한 행동을 따라 하듯이 아주 민첩하게, 한치의 착오도 없이 움직여야 한다 ㅎㅎㅎ.


이 방법으로 오늘 삶은 달걀은 반숙의 달걀로 퍼펙트했다! 음하하하…

노른자가 바닷물이 막 빠져나간 갯벌처럼 촉촉하니 부드럽게 아주 잘 익었다!!!

PERFECT!!!


달걀을 삶으며 불현듯 


‘달걀의 예민한 timing처럼 인생의 timing 또한
예민하게, 민첩하게, 세심하게 catch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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