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차를 몇 잔 마신 거야!
남편의 지방 출장이 있는 날이다.
그런 날은 여행 삼아 가끔 남편을 따라다니곤 한다.
집 밖 출입이 많지 않은 아내를 배려하는 남편의 따뜻한 마음의 산물이었고, 나 또한 바깥공기를 맞고 남편 일 끝날 때까지 좋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아 가끔 따라다니는 편이다.
다른 사람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여간해선 화장도 하지 않은 채 모자 푹 눌러쓰고 아주 심플하게 단출하게 챙겨서 집을 나선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노트북과 노트북 가방에 책 한 권, 핸드폰, 카드 지갑을 넣고 재빠르게 남편을 따라나섰다.
우리 집에서 아산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1시간 반 정도라 드라이브하기에도 좋은 거리였고, 또 며칠째 내리던 비도 그친 터라 하늘도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파래 여행 아닌 여행을 즐기기에 딱!이었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과 집에서 준비해 온 사과, 반숙으로 삶은 달걀, 커피(난 따뜻한 차)로 아침을 먹으며 여행의 설렘을 맘껏 누렸다.
cafe 유배 1.
아산에 9시경에 도착했다.
일단 남편이 일 끝나고 올 때까지 죽치고 앉아 있을 카페부터 찾는 게 우선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대부분의 카페가 문을 열지 않았다. 오른손에 들린 노트북 가방이 조금 무거워지려는 순간 다행히도 문을 연 카페 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자몽 주스’를 주문하고 박완서 선생님의 <그 여자네 집>을 읽기 시작했다.
‘이것을 읽다 보면 남편이 오겠지! ㅎ’하는 가벼운 심정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어, 그런데 한두 시간이면 돌아온다는 남편이 감감무소식이다.
‘어, 이거 아닌데…’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12시가 지나고 1시가 지나고…
배꼽시계가 점심을 먹여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순간에도 남편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다.
아무래도 혼자서 점심을 먹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배가 고프니 먹고 볼 일이다.
가끔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도 아주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cafe 유배 2.
‘어, 2시가 다 되었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네 ㅠㅠㅠ’
‘저런, 일이 많은가 보네 ㅠㅠㅠ’
‘어쩔 수 없지, 뭐 ㅠ’라고 생각하며 나는 또 다른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이번에는 ‘수박 주스’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아무래도 남편 일이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은 예감에 ‘이제부터는 글을 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쩌지… 아무래도 4시경이나 회의가 끝날 것 같아… 미안해…’
순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지금부터 2시간! 뭐, 금방 가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카페가 있는 자리가 회사 근처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고, 그들의 요란한 대화 소리, 웃음소리에 정신이 팔려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다시 카페를 나왔다.
남편이 일이 끝나려면 아직 1시간 이상 더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카페 사냥에 나서야 했다.
좀 더 한적한 곳,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을 찾아 처음 가본 낯선 거리를 헤맸다.
끈적끈적하고 더운 날씨, 무거운 노트북 가방, 낯선 건물, 낯선 사람들이 먼 나라 아주 낯선 이방인들처럼 보였다.
cafe 유배 3.
드디어 주택가 한적한 곳에 자리한 한 카페를 찾았다.
카페의 모양새, 뷰 따위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남편 올 때까지 조용한 카페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
또 차를 시켰다.
이번에는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주문했다. 예전 같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커피를 주문했을 텐데, 위가 약한 관계로… 아쉬웠다…
여하튼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는 Good!이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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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모른다.
그동안에 나 외에 다른 손님 두 명이 왔다간 것 외에는 다른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나와 카페 주인만이 그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갑자기 괜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더 있으려면 차를 더 주문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
진짜 차를 더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또 차를 주문했다.
이번에는 달달한 ‘대추차’를 주문했다.
또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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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4시가 넘었는데…’
4시에 끝난다던 남편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다.
‘어쩌지… 허리도 아프고 글도 더 이상 쓰기 싫고, 책도 읽기 싫은데…’
‘아~ 눕고 싶어…’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또 그 카페를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작정 낯선 거리를 걷는 것이다.
노트북 가방의 무거움을 상쇄시키기 위해 오른손 왼손을 바꿔가며 들었다.
‘아... 너무 무겁다 ㅠ’
‘아, 눕고 싶다… 쉬고 싶다…’
쉴만한 공원도 의자도 어디에도 없었다.
뭔 고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거의 8시간을 길거리에서…’
‘유배네, 유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게도 좋아하던 카페가 감옥이 되었고, 카페에서 카페로 옮겨 다니는 꼴이 마치 <카페 유배>를 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cafe 유배 4.
이런…
또 어쩔 수 없이 다른 카페를 찾아 그만 의자에 앉고 말았다.
그리고 애먼 ‘캐모마일’ 차 한 잔을 또 주문했다.
앉아 있는 의자가 마치 내 온몸을 칭칭 동여매는 족쇄처럼 다가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도록 꽈아악~ 옥죄는 ㅠ.
차도 마시지 않은 채 바깥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멍~~~ 하니.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ㅎ.
아침에 낯선 곳에서 헤어져서 거의 9시간 만에 만난 남편은 마치 지구를 구한 히어로 같아 보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말했다.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할 때 왜 그렇게 글을 많이 썼는 줄 알겠어!”
“할 일이 그것밖에 없었겠지!”
“나도 오늘 엄청 많이 썼어!”
“그래, 잘했네! 미안해서 혼났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삶이 단순해지면 글 읽고 글 쓰고, 이런 일들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이 들면서 삶이 단순해져야 할 것 같아.”
감히 정약용 선생님과 나를 비교할 순 없지만, 아산에서의 9시간은 내게는 유배와도 같은 시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카페 의자에 앉아 책 읽고 글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선택 사항이 전혀 없는, 단순한 <카페 유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