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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Feb 13. 2024

육수 내기 놀이

   혼자 노는 방법  < Life 레시피 >

 혼자인 게 이젠 제법 익숙하다.


  전에는 혼자 있으면 왠지 허전하고 외롭기까지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혼자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점점 더 외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늘 해 오던 일들이지만(새롭게 시작한 것들도 있지만), 나만의 놀이로 생각을 바꾸기 시작하고 하나하나 실천해 가는 중이다.


그중에,

가족이 아침 일찍 나가 저녁에 늦게 들어오는 날은 <육수 내기> 놀이를 하기로 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모든 것이 엿장수 마음대로이기 때문에 수시로 변한다 ㅋㅋㅋ).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가 되기까지 내게 주어지는 시간은 약 12시간이다. 12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간과 정성이 가득 필요한 육수를 낸다면 오늘 하루도 보람차고 행복한 날이 될 것 같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육수를 달이고 달이는 시간들이 내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요즘 시중에는 육수를 가루로 만들어 정제된 - 마치 알약처럼 육수를 만들어 파는- 제품들도 있지만, 나만의 재료들로 육수를 만든다. 사실 시중 제품을 사서 딱 한번 써 보았다. 내가 까탈스러운 건지, 교만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손수 만든 육수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 ㅎㅎㅎ. 아니 그보단 내 입맛에 아쉬움을 많이 남긴다. 유난스럽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생긴 대로 그냥 살기로 ㅋ. 이 번거로움을 나만의 요리 놀이라 생각하고 오늘 하루 즐겁게 놀 것이다.


요리를 보다 더 재미있게 놀기 위해


 오늘은 이문세의 노래 모음(선곡은 그날그날 듣고 싶은 것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 또한 엿장수 마음이다)을 틀었다. 소리의 세기는 너무 커도 육수를 내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딱 배경음악으로만 족하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잠시 일손을 놓고 따라 부르기도 한다.


큰일을 치르는 마음으로,


 육수를 내는 일은 나에게는 마치 큰일을 치르는 듯한 마음으로, 경건해지기까지(ㅋ) 하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많은 양의 육수를 내는 일이 다른 날과는 번잡스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거나 평상시에는 잘 쓰지 않아 수납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곰솥도 꺼내야 한다. 그리고 물의 양 또한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다. 아마도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닐까??? 번잡스러운, 아주 커다란 곰솥과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을 준비했다면 이젠 재료들을 넣고 ‘시간아 가라! 시간아 맛있게 끓여라!’ 하기만 하면 된다.


육수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그림 : 김자민


많은 양의 물(약 6L), 멸치 1줌(똥을 떼어내고 마른 팬에 덖은 것), 다시마 2장(기장 다시마를 기준으로 긴 것

), 소고기 국거리 600g(양지나 사태), 양파 2개(중간 크기), 파뿌리 5개 (파를 다듬을 때, 파뿌리를 깨끗이 씻어 자른 뒤, 말려 보관해서 쓴다)


멸치/다시마로 육수 내기


1. 멸치와 다시마를 찬물에 10분 정도 담가둔다.

*끓이기 전에 이 작업을 하면 멸치와 다시마가 부들부들해지면서 육수를 더 진하게 빼는데 효과적이다. 귀찮으면 안 해도 되지만, 그래도 경험상 육수가 훨씬 더 맛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2. 1의 작업이 끝난 뒤, 불을 켜고 센 불에서 끓이기 시작한다.

3.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중불로 놓고, 약 10분 정도 더 끓인다.

4. 10분 정도 팔팔 끓으면 다시마는 먼저 꺼낸다.

*이때 다시마는 버리지 말고 다른 요리에 부재료로 사용하면 좋다. 예를 들면, 우엉볶음이나 장조림 할 때 넣어서 조리면 이 다시마도 훌륭한 식감을 자랑한다. 씹히는 맛이 제법이다.

5. 20분 정도 더 끓인 뒤, 멸치를 건져내고 불을 끊다.

*아! 멸치도 다시마처럼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이 지금 막 들었다. 다음엔 버리지 말고 해 봐야겠다!


소고기로 육수 내기


1. 소고기를 키친타월에 싸서 30분 정도 둔다.

*이 작업은 소고기의 핏물을 제거하는 것인데, 소고기가 갖고 있는 누린내를 없애는데 꼭 필요한 작업이다. 아무리 번거롭더라도 이 작업만큼은 꼭 하길 바란다. 번거로움 뒤에 구수한 소고기의 훌륭한 맛을 맛보게  될 것이다.

2. 핏물을 뺀 소고기를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이것도 생략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도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맑고 깨끗한 육수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바쁜 세상살이에 뭐 이렇게까지 수고롭고 번잡스럽게 요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늘 이 길을 선택한다. 바보스러울 수 있지만 ㅎㅎㅎ.


둘을 합쳐 육수 내기


1. 멸치/다시마 육수에 소고기 육수, 적당한 크기로 자른 양파, 파뿌리를 넣고 센 불에서 끓이기 시작한다.

2. 팔팔 끓으면 중불에서 끓인 뒤, 양파가 보기에 푹 익었다 싶으면 불을 끄고 잠시 둔다.

5. 4에서 소고기를 꺼내 식힌 뒤, 건더기를 체로 걸러낸다.


삶은 소고기를 결대로 쫙쫙


1. 삶은 소고기가 어느 정도 식으면 손으로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찢는다. 이때 불순물이나 힘줄, 기름기 등을 제거하면 좀 더 맑은 육수를 만들 수 있다.

*이때는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린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 동안 음악이나 라디오, TV 등을 보며 고기를 찢는다. 단순 노동이기 때문에 이 노동에만 집중하다 보면 점점 지루해져서 노동이 즐겁지가 않다. 거기에다 허리나 어깨까지 아파오기 시작하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나는 맛있는 육수를 만들기 위해 즐거운 도를 닦는다.


진하게 육수 내기


1. 찢은 고기를 건더기를 건져낸 육수에 넣고 다시 끓인다.

2. 팔팔 끓인 뒤 불을 끄면 드디어!!! 맛있는 육수가 완성된다.


육수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기


위의 육수가 식으면 한 번 먹을 정도의 양으로 소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다양한 요리에 사용하면 오래도록 먹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날은 미역국으로, 또 어떤 날은 시래기 된장국으로, 또 어떤 날은 소고기뭇국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혼자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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