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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Feb 19. 2024

어! '빵꾸'가 났다.

좀벌레의 알리바이  < Life 레시피 >

어, 남편 스웨터에 ‘빵꾸’가 났다. 자세히 보니 아마도 좀이 쓴 것 같다. 얼마 전에 방구석에서 꼬물거리던 좀벌레를 발견한 적이 있는데, 그놈이 이 일을 저지르고 배불러 운동 중이었나 보다. 물론 그놈을 발견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휴지로 집어 변기에 넣고 시원하게 물을 내려 버렸지만...

그러고는 나타나지 않아 까먹고 있었는데 ‘빵꾸’를 보는 순간 그놈의 출현에 대한 알리바이의 앞과 뒤를 알게 되었다.


분명 그놈 짓이었네 ㅠㅠㅠ.


예전에도 좀이란 놈이 내 목도리를 사각사각 갉아먹어 ‘빵꾸’가 났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좀이란 놈의 존재 자체를 모를 때였는데, 친정 엄마가 좀벌레라고 가르쳐 주셔서 신기한 놈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좀이란 놈은 어둡고 습한 것을 좋아하고, 천연섬유를 갉아먹고 산다고 한다. 남편 스웨터도 좀 무리(?)를 해서 내 스웨터보다 더 비싼 것을 사 주었는데, 결국 좀이란 놈이 사달을 내고 말았다.


참, 별 걸 다 먹는 놈이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섬유를 먹는다고!

정말 어이가 없다.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도 천연섬유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결과였던 것 같다. 약간 속도 쓰리고 반성도 하는 날이다. 빨리 ‘빵꾸’를 땜방해야 할 것 같다. 계획에도 없던 바느질을 해야 할 판 ㅋ.


우선, 좀벌레가 왜 생겼는지부터 따져 봐야겠다!


좀이란 놈이 궁금해???


1. 좀이란 놈은 천연섬유를 먹고 산다고 한다(아무한테나 이놈 저놈 하진 않는다. 벌레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그냥 벌레란 놈이 싫다).

천연섬유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순수하게 얻어지는 섬유를 말한다. 예를 들면, 양모, 캐시미어 등이 있다(더 많겠지만 내가 아는 수준 ㅋ).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놈의 식성을 이해할 수가 없다.


2. 좀이란 놈은 어둡고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 집이 어둡고 습기가 많은 편도 아닌데... 오히려 건조한 편이라 자기 전에 빨래를 여기저기 걸어놓고 자는 편인데... 창문이 많은 편이라 어둡지도 않은데... 아무리 추운 날도 가능하면 하루에 한 번씩은 창문을 30분 정도 열어 놓는데... (내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이유가 있을 텐데, 무얼까???


3. 모를 때는 무엇이든 다 알려주는 인터넷에게 묻는다.

 아...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천연섬유에 대한 나의 몰상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천연섬유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     

그림 : 김자민


1. 천연섬유의 옷은 매일 안 입을 것.

다른 옷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천연섬유의 옷은 매일 주야장천 입지 않아야 한단다. 똑같은 옷을 매일매일 입다 보면 땀이 섬유에 배어 습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좀이란 놈이 이런 환경을 좋아한단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 남편은 마음에 드는 옷이면 교복처럼 매일매일 입고 다닌다.


아! 그렇다면 여자들이 매일 다른 옷을 입는 것은 패션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무의식 중에 섬유에 대한 예의를 깍듯이 잘 지키는 것이 아닐까...


2. 입고 난 옷은 잠시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걸어둔다.

하루 종일 입고 다닌 옷은 성실히 자기 임무를 수행했다. 주인(?)이 흘리는 땀을 흡수하여 좀 더 쾌적한 환경을 마련하느라 열일을 다한 것이다. 갑자기 나를 위해 애쓰는 내 옷에 대한 경의를 표현해야만 할 것 같다 ㅎㅎㅎ.

애쓴 옷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다름 아닌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잠시 걸어두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애쓴 옷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다.


3. 어느 정도 옷이 말랐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날을 위해 잘 접어 둔다.

니트로 만들어진 옷을 옷걸이에 오래도록 걸어두면 쭉쭉 늘어나 보기 흉하게 된다.


순간 뭉크의 <절규>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얼까? ㅋ.


4. 옷방이나 옷장의 문을 수시로 열어 통풍을 시켜야 한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가 좀이 싫어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적어도 2, 3일에 한 번은 문을 활짝 활짝 열어 두어야 한다. 귀찮다면(정말 많이 양보한다 ㅎ) 일주일에 한 번 만이라도! 제발!!!  


드디어, 좀벌레가 떠나다!


좀이란 놈이 싫어할 요소를 다 갖추었다면, 좀이란 놈도 멀리 이사를 갈 것이다. 어둡지도 않고 게다가 건조하기까지 하니, 나라도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밝고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는 곳을 좋아하지만 모두들 나랑 같을 순 없을 테니까. 그냥 좀이란 놈의 습성을 인정하는 걸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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