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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Oct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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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 일기 1 >

40대 초반에 우울증을 겪었다.

나의 상황이 나의 환경이 너무 비참하고 벅차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정말 힘들었다. 남편 앞에서는 울기도 하고 짜증도 낼 수 있었지만 어린 딸아이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아니 자존심이라기보다는 알량한(?) 모성애라고 해야 할까? 나는 우울함을 잊기 위해 무작정 잠만 자댔다. 시간만 나면 자고 자고 또 잤다. 친정부모님도, 남편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만 자댔다. 하지만 어린 딸아이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딸아이가 집에 있는 날에는 있는 힘 없는 힘 쥐어짜가며 아이의 눈에 멀쩡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모성애라는 게 참 무섭긴 한 것 같다 ㅋ.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집에 없으면 그때부터 나는 불을 다 끄고, 전화 코드 빼고, 긴 침묵에 들어간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 영원히 깨지 않을 것처럼 깊은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떻게 그렇게 잠을 잘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눈을 뜨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끝없는 불안과 염려가 가득 차올랐다.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불안한 감정들이 내 온몸과 내 마음을 빨아먹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그 감정들을 잊기 위해 깜깜한 동굴 속으로 깊이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러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오후가 되면 슬금슬금 일어나 아이 맞을 준비를 한다. 혹여라도 딸아이에게 내 우울한 감정을 들키기 싫어 기를 쓰고 안 잔 척했다(그런데 그때 아이는 알았던 것 같다. 얼마 전 대학생이 된 딸아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늘 누워만 있었어!” “그래, 그게 생각나.” “그럼. 웃지 않고 늘 누워만 있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순간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을 들키고 만 것 같은 당혹감으로 얼굴이 벌게졌다. “그때 엄마가 우울증에 시달리느니라 그랬어ㅠㅠㅠ… 미안해ㅠㅠㅠ…”라고 허겁지겁 사과의 말을 전했지만 딸아이가 받았을 상처에 가슴 시렸다).


어느 날, 친하다고 생각이 드는 목사님에게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부렸다.

“목사님~ 저 요즘 우울해요!”라고, 그리고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목사님이 “요즘 살만 한가 보네!”라고 하면서 실없는 농담을 툭 던지고 휭~ 가버리는 것이다.

‘살만 하다고!’

기가 막혔다(그 당시 ㅋ).

‘살만 해서 배부른 소리한다는 말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서운한 감정이 갑자기 훅↑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목사님도 나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또 조금 친하다는 이유로 농담을 한 것뿐인데ㅠㅠㅠ... 그때는 내 감정만 보이던 때라 너무 섭섭했다.

지인들 중에서도 내가 우울해하는 것을 보면서,

“기도해!”

“교회에 바짝 붙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지!”

“봉사 열심히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거야!”라는 말들을 해 주었다.

분명 나를 생각해서 하는 위로의 말들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소리들이 내 귓가에서 맴맴 맴돌 뿐 내 심장에 내 머리에 꽂히진 않았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나마 주일날이 되면 어김없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다(하나님의 은혜로, 그 힘으로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그 당시 남편은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를 깨워 매일같이 새벽기도를 데리고 다녔다. 어린아이처럼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는 날에도 남편은 수건에 물을 적셔와 내 얼굴과 손을 닦인 뒤 나를 일으켜 교회로 달려갔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내 옆에서 내 유치한 투정도 다 받아주고 묵묵히 지켜만 봐주던 내 사랑하는 남편. 본인도 너무 힘들었을 텐데... 아마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철없는 아내를 데리고 다녔을 것이다. 내게 그 어떤 조언의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옆에서 지켜보며 묵묵히 기도해준 남편 덕분에 나는 지금껏 감사하며 잘 살고 있다 ㅎ.


성경 속 욥의 세 친구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모두 잃고 재산까지 모두 잃고 건강까지 잃어버린 욥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을 한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엘리바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빌닷)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소발)


무심코 읽다 보면 다 좋은 말이고 새겨야 할 말들이다.

그러나 성경 말씀의 전후 맥락을 살펴볼 때, 이 세 친구의 말들이 과연 고난과 고통 속에 처해 있는 욥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었을까? 내 귀에는 마치 욥에게 “그러게 잘해!”라고 비난의 소리를 퍼붓는 것처럼 들린다. 모두들 자신들의 지식과 의만 내세울 뿐 정작 고통 중에 있는 욥에게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줄 뿐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가?

나는 이 세 친구들처럼 하지 않는가?


이 아침 나를 돌아보며 회개의 기도를 한다.


나의 교만한 말들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용서해 주세요!

나의 배려심 없는 행동들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용서해 주세요!

한 사람 한 사람 대할 때마다 더 배려 깊고, 더 겸손하고, 더 신실하고, 더 정직하고, 더 진심 어린 마음으로 하게 해 주세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기도로 도와줄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려움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내 옆에서 기도하며 묵묵히 지켜봐 주었던 남편처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편 4절)


https://youtu.be/W3KElVsuk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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