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 일기 1 >
1998년 2월 5일, 딸아이가 우리 가정에 축복처럼 찾아왔다.
결혼 초 나는 요즘 소위 말하는 딩크족 중에 하나였다. 그 당시 특수 교사였던 나는 장애아들을 돌보는 데에도 너무 지쳐 있었다. 사실 장애아들만 5년 넘게 보면서 슬쩍 겁도 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남편에게 아기 없이 살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남편도 그럭저럭 동의하는 듯하기도 해서 아이를 안 가지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 가운데 내 욕심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지나치도록 계획적인 성격이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건강한 아이를 갖기 위해 나는 그날부터 이 병원 저 병원을 드나들며 건강검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멀쩡한 사랑니를 빼야겠다는 생각에 치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가끔 피곤할 때마다 사랑니 쪽의 잇몸이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임신했을 때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괜한 불안감이 나를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니를 빼기 위해 X-Ray를 찍고, 빼고 나서도 진통제와 항생제를 계속 먹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우리의 아이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다 회복된 뒤 시간을 갖고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는데... 참,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때 또 깨달았다. 나의 시계는 내 마음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깨닫지만 인간적으로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에서 ‘어서 빨리 조치를 취해야지! 그렇게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어떡해! 빨리 산부인과로 달려가!’라고 외쳐댔다. 머리가 시키는 대로 발걸음이 산부인과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에구… 안 좋은 일은 다 하셨네요!”
“어떻게 해야죠?”
“진통제와 항생제라… 기형아가 태어날 수도…”
“네?!”
“안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어요.”
걱정하던 일이 눈앞에 닥쳤다.
“그럼 어떻게 해요?”
“아이는 또 가지면 되니까 수술을 합시다!”
“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내 생각보다는 빨리 찾아왔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한 아이를 보내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하더니 의사 선생님의 말에 현혹되기 시작했다.
우선 남편에게 전화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남편은 일언지하에 딱 잘라 말했다.
그날 이후로 남편과 나는 내가 먹은 약 성분에 대해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사 친구인 지인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괜찮아! 그 정도는!” 의사 친구는 아무 걱정 없다고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긴 기도에 들어갔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불안함은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지만 일단은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가기로 했다. 혹여 장애아가 태어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니 받아들이자고… 우리 부부의 선택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기도했다.
우리 부부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는지 아이는 너무 건강하게 태어났다.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눈, 코, 입…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살고 있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감사 밖에 할 수가 없다.
부모와 자녀의 인연의 끈은 우리 스스로 자의적으로 맺을 수가 없는 일이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 또한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행한 행위로, 예를 들면, 내가 착해서, 내가 의로워서, 내가 성실해서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이다. 단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아가는 길 밖엔 없다. 기도하면서… 따르는 길 밖에는…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로마서 9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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