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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May 30. 2016

거대하고 새하얀 목욕탕

파묵칼레 2014년 12월 17일

거대하고 새하얀 목욕탕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목을 쳤다.


하얀 석회층이 목화의 모습과 비슷해서 '목화의 성'이라는 뜻의 '파묵칼레'라고 불리는 곳이다.


로마 시대에는 목욕탕이 복지시설이었다 한다. 황제가 시민들을 위해 목욕탕을 지어주고 관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 까닭에 석회암 사이로 온천이 흐르는 이곳 파묵칼레는 로마 제국의 중요한 휴양지 중 하나였고 이 거대한 목욕탕 위에는 귀족과 시민들이 생활했던 로마 시대의 유적이 가득하다. 로마 신들을 모시는 신전과 생활공간, 그리고 거대한 원형극장이 있다.

  

목욕 문화가 퇴폐라 생각했던 기독교가 국가의 중심 종교가 된 이후 이 곳 파묵칼레는 로마인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다시 이곳이 주목받은 것은 관광 상품으로 다시 유명세를 날린 까닭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은 다시 재앙을 불러온다. 관광으로 주민들이 늘어나고 호텔 등의 숙박시설들도 이 온천수를 끌어 가면서 온천수가 거의 말라 버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목을 친 것이다.


10여 년 전까지도 석회암 층 사이에 고인 계단식 풀에서 관광객들이 온천욕을 즐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금지되었을뿐더러 그럴 정도로 고여 있는 온천수도 보기 힘들다. 예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채워 놓은 곳은 물에 비치는 하늘과 하얀 석회층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보이지만 더 이상 온천수를 즐기는 휴양지는 아니다. 이 비어있는 공간이 바로 인간의 욕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몸은 담그지 못하고 흐르는 물에 발이라도 담가본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석회가루와 온천수가 기분 좋게 만든다. 얼굴에도 하지 못한 석고팩을 발에 하고 간다. 여행 중 가장 고생을 했던 발이 오랜만에 호강을 했다. 


석회층 위로 '히에라폴리스'라는 로마 유적지가 있다. 유적지도 그 사이의 무관심 때문에 거의 무너져 버렸지만 최근 다시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무너져 버린 유적을 보며 '캄보디아 유적에 비하면 검소한 수준이구나' 했다가 다시 생각하니 건축 시기가 다르다. 천년에 가까운 시간적 차이를 생각하면 그 시절의 건축 기술과 노력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목욕을 중요하게 생각한 때문인지 무너져 버린 유적지 사이사이로 수로들이 빼곡하다. 신전들과 거대한 원형극장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예들이 고생을 했을까 연민을 느껴본다.


그런 생각도 잠시이고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내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또 원형 극장에 앉아서는 '나도 그 시절 태어났으면 저곳 어딘가에 앉아 있었겠지.' 생각한다. 그러다 시민과 노예의 비율을 생각하면 저 아래에서 사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던지 목욕 시중을 했을 확률이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시절이 아닌 지금 이 시절에 태어난 것이 행운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것도 상당한 행운이다.


멀리서 보는 파묵칼레
아주 작은 수로를 통해 흐르는 온천수
대부분이 비어 있다.
예전에는 온천수에 포함된 원소들에 따라 물빛이 달랐다고 한다.
채워진 곳의 모습은 아름답다.


로마시대의 무덤
복구 중인 신전
북문
신전의 주기둥들
유적지 사이 수로가 빼곡하다.
원형 극장
고고학박물관의 유물들
유적지의 부조물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박물관 뒷마당에 놓여 있다.


발만 호강한다.


유적지 사이에 온천을 경험하기 위한 수영장이 있다. 물 안의 유물들이 보인다.


시골 모습은 어디든 아름답다.
언제부턴가 항상 일몰을 찍는다. '내가 왜 이러지? 의무도 아닌데' 하다가 '하염없이 퇴근시간 기다리는 것 보다는 낫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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