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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Jun 01. 2016

재스민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카이로 2014년 12월 31일

재스민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종교의 차이가 신분의 차이가 되기도 한다.


튀니지 남쪽 작은 마을의 과일 행상이었던 26세의 '무함마드 부아지'를 단속하던 경찰은 8명의 가족 앞에서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 8천5백 원 정도의 벌금을 부가했다. 그는 벌금을 납부하는 대신 다음 날 시청 앞에서 분신을 한다. 재스민 혁명의 시작이다. 독재가 계속되던 이슬람 국가들에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외침이 커져만 갔다.


인구 1,200만 명의 대도시 카이로에는 도시 곳곳에 아직 시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재스민 혁명 때 불타버린 자유당 건물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고 중요 건물들에는 바리케이드와 철조망, 무장한 군인이 상주해 있다. 타하리르 광장의 지하철역은 3년째 폐쇄되어 있고 인근 역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경제 불황을 이유로 또다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바뀐 정권도 결국 이집트 주민들을 위하는 정권은 아니었다. 군사 독재 정권이 물러나자 그 자리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차지했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 잠잠한 모양이다. 시위 모습도 소식도 듣지 못한 시간이다. 지키는 군인들의 표정도 긴장보다는 여행객과 즐기는 모습이다. 박물관의 군인들에게 말을 걸어보니 웃는 낯으로 반겨준다.


이집트인에게 파라오 유적은 역사가 아닌 돈벌이 수단인 것 같다. 보관 상태나 관람 형태가 많이 부실하지만 관람료는 다른 물가에 비하면 너무 비싼 편이다. 낡은 나무 책장에 놓인 대체 불가능한 유물들이 안쓰럽다. 어디에도 없는 것이고 또 사라지면 다시 못 볼 것이다. 유물 관리를 생각하면 이집트 유물들이 유럽 강대국에 강탈당한 게 다행이라는 사람들까지 있다. 


왕릉의 계곡에서도 당한 것이지만 박물관 안에 또 다른 관람료가 있다. 투탕카멘 전시관을 별도로 만들어 관람료를 따로 받고 있다. 박물관 입장료의 수 배 금액을 요구한다. 


세 개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모여 있는 기자 피라미드를 다녀왔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에 그늘을 피할 공간 하나 없고 암표상들과 별 필요 없는 항목을 묶어 비싼 돈을 요구하는 가이드들이 가득하다. 


건물 높이로 치면 53층이나 되는 146m 높이의 쿠푸(BC 2,500년 20년 공사) 그리고 카푸라, 멘카우라(핑크 피라미드) 피라미드가 있고 그들의 아내들을 위한 작은 피라미드들이 놓여있다. 너무나 거대한 건축물들이다. 그리고 피라미드 건설에 쓰인 돌은 멀리 룩소르에서 가져온 것이다. 기차로 9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그래도 노예들만에 의해 이 곳을 지은 것이 아닌 전문 기술자들과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며 건설하였다고 하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현재 이집트인의 12~15%는 기독교도이다. 정통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불리는 콥트 기독교다. 유대왕 헤롯의 3세 이하의 모든 아이들을 살해하라는 명령 때문에 아기 예수가 피난을 했던 곳이 바로 카이로에 있는 올드 카이로 구역이다. 마가복음을 쓴 마가의 전도 이후 이집트는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였다. 


콥트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의 이교도라는 탄압과 로마 교단의 이단이라는 외면을 오랜 기간 버텨며 지금도 그들의 종교를 버리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종교가 선택이 아니라 부모에서 자식으로 승계되는 종교라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손목에 십자가를 새기고 그들은 교육과 직업 선택 등에서 외면당하며 대물림당하는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아픔이 가장 절실하게 보이는 곳이 모까람(Garbage City)이다. 인구가 4만이나 되는 마을 전체가 쓰레기 속에서 그 쓰레기를 분리하며 살아간다. 카이로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쓰레기가 모까람으로 들어간다. 길은 물론 집 안까지 모두 쓰레기가 가득하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쓰레기는 여기에서 자원이다. 길 위에 놓인 동물의 사체도 누구 하나 치우는 사람이 없다. 


이 곳의 주민 90%가 콥트 기독교도이다. 손목에 새겨지는 십자가 문신을 지우지 못하고 대물림 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이 없다. 이슬람 속에서 소수로 살며 직업을 갖지 못하고 빈곤을 버텨온 이들에게 종교는 과연 축복일까? 어쨌든 천이백만 명이나 되는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믿는 신은 같다. 그 신은 과연 어느 쪽을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하다. 멜기세덱이 말한 세 개의 진짜 반지 이야기가 있다. 모두 같은 반지이고 모두 진짜라 믿는다면 더 평화로운 세상 그리고 그들이 믿는다는 세상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시와 무박 3일, 알렉산드리아 당일치기의 강행군을 한 이유가 모까람의 이야기를 뒤늦게 듣고 여기를 방문할 시간을 짜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가보고 싶은 곳이고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모까람에도 작은 행복들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타하리르 광장 - 이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이 정권을 바꾸었다
박물관 옆 구 자유당사 옆에는 아직 장갑차가 있다
곳곳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져 있다.
불타버린 자유당사. 앞 건물이 박물관이다.
박물관 - 1/5이 투탕카멘 유물이다.
촬영금지인데 무심코 찍은 사진
쿠푸 피라미드 - 53층 높이
퀸 피라미드 중 하나의 내부를 들어 갔다. 왕의 피라미드 옆에 왕비들의 작은 피라미드들이 2~3 개씩 있다.
올드 카이로의 콥트 기독교 교회
올드 카이로 구역 내에 작은 교회들이 여러 개 있고 그 뒷 골목들은 이런 분위기이다. 저런 십자가가 진짜가 아닌지?
올드 카이로 내의 기념품 판매 가게
 기독교 거주 지역을 분리하는 바리케이트 - 기독교인에 대한 테러가 자주 발생한다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더 많아지고 있다.
모까람 내부
마을 안에는 십자가가 빼곡하다.
모까람 전경 -  이 교회 아래가 모두 Garbage City이다.
모까람 뒷편의 교회
만명이 앉을 수 있는 동굴교회 - 원래 이렇게 크지 않았는데 이집트 정부에서 관광지로 해볼까 해서 확장한 것이라 한다
교회 외관 - 이 교회 외에 마을 깊숙한 곳에 작은 교회가 하나 더 있다.  환영은 받았지만 사진은 찍지 못하게 했다. 그 곳이 더 정감 있었다.
카이로 다운타운
음식은 먹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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