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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Dec 18. 2023

행감바와 인사약

화날 때 먹는 아이스크림, 미안할 때 먹는 약

 교실에서 교사는 수많은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곤란한 역할은 바로 판사입니다. 교실에서 유일한 어른으로 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눈망울로, 말이 안 통해 답답해 죽겠다는 몸짓으로 달려오는 학생들을 마주하게 되거든요. 발령 첫 해, 저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솔로몬'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법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교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과연 학생들의 잘못을 명명백백 가릴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누구 한 명의 온전한 잘못도, 다른 한 명의 온전한 오해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선생님!!”을 외치며 교실 앞으로 나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곤 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쟤가 먼저 그랬어요.", 그리고 그 자매품인 "재도 그랬어요."있겠네요.


 사실 저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탓하는 말부터 쏟아낸다는 게 가장 속상했습니다. 너무나도 쉽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결과론적으로 대했던 건 아닌지, 그래서 혼나기 싫은 마음에 변명부터 하는 건지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학년 학생들을 한 해 연달아 맡다 보니 새로운 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표현에 서투른 것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얘기하기도 전에 울음이 터져버리고, 체구도 작고 뱃심도 약한 1학년이 겨우 뱉은 "미안해"란 한 마디는 세상에 나오기 무섭게 증발되어 버리거든요.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선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아이로 지도할 방법을 한참 찾다가 저학년 학생들이 쉽게 이해했던 방법이 있어 공유하려 합니다.




행감바와 인사약

A: (흐엉엉) 선생님, 쟤가 계속 저한테 미역줄기라고 놀려요
B: (씩씩 거리며) 아니에요. 쟤가 먼저 저한테 빡빡이라고 놀렸어요. 야, 네가 먼저 그랬잖아! 똑바로 얘기해.

 교실에는 수많은 학생 A와 학생 B가 있습니다. 거기다 다투는 이유도 저마다 다양합니다. 분명 어제까지는 친구가 부르는 별명이 내가 듣기에도 조금 재밌는 것 같고, 나도 똑같이 친구를 별명으로 불렀으니 괜찮은 것도 같았는데 오늘은 뭔가 기분이 나빠 눈물이 나거든요. 그럼 예전에 기분 좋게 장난치고 놀았던 일들도 한 데 묶여 '기분 나쁜 일'이 되어버리곤 맙니다. 이렇게 속상한 일이 있거나 사과할 일이 있을 때 저희 반에서는 <행감바><인사약>을 먹습니다.


행동: 나를 속상하게 했던 행동
감정: 그때 내가 느낀 감정
바라는 점: 앞으로  상대에게 바라는 점
인정: 내가 잘못한 점을 인정
사과: 미안한 마음 전하기
약속: 앞으로의 변화 약속하기


 3월 한 달 동안에는 행감바와 인사약을 매일 아침 연습합니다. 학생들이 자주 다투는 몇 가지 상황을 예시로 들어 행감바로 자신의 마음을 말해보고 인사약으로 사과해 보는 연습을 하는 거죠. 한참을 연습하던 어느 날엔 아이들이 배가 부르다며 더는 아이스크림도, 약도 안 먹어도 될 것 같다고 말하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납니다. 


 사실 이 연습을 시작하던 초반에만 해도, 성인도 남을 힐난하지 않고 말하는 게 어려운데 초등 1학년 학생들이 이렇게 성숙한 말하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요. 그런데 일주일 정도 연습하니 앞선 걱정이 부끄러울 정도로 아이들은 척척 해냈습니다. 처음에는 각 낱자의 뜻을 외워서 떠듬떠듬 말하는 게 꼭 AI 같기도 하지만, 며칠 연습하다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따라 곧잘 이야기합니다.

A: 나는 네가 나한테 미역줄기라고 놀려서(행) 기분이 나빴어(감). 앞으로는 이름으로 불러줘(바).
B: 내가 널 별명으로 불러서(인) 미안해(사). 앞으로는 꼭 이름으로 부를게(약).
B: 그런데 나도 억울한 부분이 있어. 네가 나한테 빡빡이라고 놀려서(행) 나도 속상했어(감).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지 말아 줘(바).
A: 내가 먼저 놀려서(인) 미안해(사). 앞으로는 놀리지 않을게(약).

 사실 이런 상황에 두 명의 당사자가 앞에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신의 억울함을 먼저 얘기하고 싶어 합니다. 이 때는 가위바위보로 결정합니다. 별 것 아닌 꿀팁을 나누자면, 저는 가위바위보에 진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할 기회를 주곤 합니다. 안 그래도 싸워서 기분 나쁜데 가위바위보조차 지면 더 슬플 테니 말할 기회는 진 사람에게 먼저 주겠다며 교사가 조금만 짓궂게 얘기하면 아이들은 그때부터 씩 웃기 시작합니다.




 처음 저학년 학생들을 봤을 때는 왜 각자 자기 얘기하기 바쁠까, 왜 다른 사람 생각에는 관심이 없을까, 성선설이 아닌 성악설을 믿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전공 책에서 보았던 '저학년은 자기중심적이다'란 구절을 이해하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저는 자기중심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을 완벽히 구분하지 못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말만 하는 모습을 이기적인 것으로 착각했고, 결국 바른 인성을 갖도록 지도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마음을 졸였던 것이지요. 지금의 저는 아이들을 존재 그 자체로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은 물론이고, 하물며 그 속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리는 데 더 많은 사회화 경험을 필요로 하는, 성장하는 존재로서 말입니다.


 저는 더 이상 스스로 책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자신과 온전히 다른 타인을 만나 투닥거리고 도와가며 귀한 경험을 쌓고 있는 이 시간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어요. 최근 형제자매를 조사하다 보면 외동이라고 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걸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아이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학교가 더욱 의미 있는 곳이 되리라 믿으며, 오늘도 환한 미소로 아이들을 맞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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