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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 Sep 29. 2021

재회(민주의 이야기)

짧은 소설 1

  습관처럼 집 청소를 마친 민주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커튼 사이로 가려진 햇빛과 풍경이 좋았다.

“위잉"


“... 그래”


민주는 동생과의 짧은 전화 통화를 끝내곤 옆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조금은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Part. 1 ‘내’가 기억하는 민주


1.

  나와 민주는 매우 친한 대학 동기로 서로의 사적 영역도 공유하는 사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이 많은 복학생과의 연애, 단기간의 이별, 즐겨 마셨던 편의점 커피, 불면증. 인상적 사건이나 사물, 단어들을 떠올리자면 이 정도가 대표적이다. 내가 기억하는 20대의 민주는 지성적이었고 맺고 끊음이 명확하였으며 내가 가지지 못한 쿨함이 있었다.

  똑 부러지는 민주는 연애 상대를 찾는데 다소 까다로웠다. 막상 그녀가 처음 마음을 내어 준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일단 그는 나이가 너무 많았고 수업 시간이나 실습 시간에 자주 늦는 것으로 보아 성실한 성격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자상해 보이지도 않았다.


“나 그때 외롭고 힘들었나 봐.”

2주 간의 짧은 연애를 끝내며 민주가 나에게 한 말이다.


2.

  대학교 재학 시절, 민주와 나는 1년 간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다. 그 당시엔 같은 지역에서 살기도 했기에 함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민주의 아버지께서 학교 기숙사까지 태워주신 적이 있다. 차 안에 커피가 박스 채 있길래 나는 이게 뭐냐고 물었다.


“응. 아빠가 나 좋아한다고 기숙사에 두고 먹으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던 민주를 보며

‘민주 아빠는 정말 자상하신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3.

  민주는 모든 것에 확실한 것을 좋아했다. 나는 관계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느라 에너지를 쏟는 편이었다면 민주는 인간관계가 깔끔하여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없었다. ‘끝까지 갈 사람과 그 나머지’. 쿨함이 진동했던 그녀에겐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병명이 있었다.


‘불면증’.

종종 민주는 말했다.

“잠이 안 와서 미치겠어. 몸은 피곤해서 정말 자고 싶은데, 잠이 들고 싶어 죽겠는데 새벽 4시에도 잠 못 들고 있는 내가 징글징글해. 자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 그냥 차라리 잠이 드는 걸 포기하고 책이라도 보는 게 더 낫더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예민한 구석이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Part. 2 그녀가 말하는 ‘민주’


 1.

   나의 20대는 불안과 우울로 가득했다. 등록금과 학비를 스스로 해결했다. 주말마다 과외를 5-6개씩 하며 나의 아까운 젊음과 시간을 ‘돈’과 바꾸었다. 평일에는 대학교 축제고 시험이고 뭐고 간에 기숙사에서 쉬기만 하며 은둔했다.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는 부모님의 다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모두 아빠의 ‘돈’ 문제 때문이다. 나는 반복되는 아빠의 비굴한 사과와 엄마의 울음소리가 싫었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 마땅한 존재들이 서로를 미워했다. 똑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일으키는 아빠가 미웠다.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감당해 낼 수 없는 빚을 짊어지게 되었다. 매번 울기만 하던 엄마는 이혼을 선택하셨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그렇게 힘없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더라. 미움은 더 커졌다. 아빠가 그냥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천벌을 받았으면 싶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서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할 사람임을 알기에 완벽히 미워할 수 없어 억울했다.


‘아빠, 우리한테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왜 아빠를 미워할 수도 없게 만들어.’


2.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남자에 대한 불신이 컸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겪었던 불신을 나의 인간관계에도 적용시켰다. 성인이 된 후 아빠에게 기대본 적이 없던 탓인지 듬직하고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마음이 갔다. 연애를 하면서도 상대를 완벽히 신뢰하지 못했다. 상대방은 나의 집착과 시험에 깜짝 놀라 연락을 끊거나 이별을 고했다. 그 이유로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짧은 연애만을 반복했다.


3.

  결혼 후에도 종종 아빠는 나에게 연락을 했다. 올해 6살이 된 외손녀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거부했다. 아빠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무조건 받지 않았고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아빠의 연락을 거부한 날이면 나는 더 예민해졌다. 아빠에게서 편지라도 오는 날이면 몇 날 며칠을 밤잠 설치며 괴로워했다. 불면증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Part 3. 재회

  민주는 아빠를 만나러 가면서 13년 간 나이 든 아빠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리곤 다시 지웠다.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잠자듯이 평온한 표정을 한 채 누워있는 아빠를 보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은 사랑했던 거야....'


아빠의 49재가 끝났다.



똑같은 집, 똑같은 일상. 하지만 민주는 자신이 꼭 다른 사람 같다. 적어도 13년 전 민주와는, 50일 전의 민주와는 다르다. 그녀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은 얼굴이다. 습관처럼 집 청소를 마친 민주는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커튼을 걷었다. 쨍하니 들어오는 햇빛과 풍경에 정신이 번쩍 드는 아침. 민주는 가만히 속삭인다.



'자, 마음껏 그리워하고 사랑하자. 민주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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