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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 Sep 29. 2021

그들이 말하는 사랑

짧은 소설 2

             

그 곳

  그 곳에는 모든 소리들이 있었다. 그 소리들은 귀로 듣는다기보단 하나의 형태를 가진 움직임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규칙적인 백색소음과 ‘우르르 쾅’ , ‘꾸륵 졸’과 같은 불규칙적이지만 생동감 있는 울림들을 쉬지 않고 느꼈다. 나는 살아 있었다. 나를 타고 흐르는 기운은 누군가의 강한 펌프질로 넘쳐 흘렀다. 한편으로 그 곳은 따뜻하고 잔잔했다. 모든 것이 나에게 적당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지칠 줄 몰랐고, 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나는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기억한다. 


  나의 집은 좁았지만 한없이 안락했다. 어느 날은 내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잠이라는 것이 그 땐 무엇인지도 몰랐다) 잠을 자다 깨면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는 내가 낯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몸’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그 당시 나는 아주 가끔 적당하지 않았다. 달콤한 무언가가 내 몸 구석구석을 누빌 땐, 나도 모르게 몽롱해지고 웃음이 나서 몸 이곳저곳을 들썩였다. 모든 것이 적당했던 시절이 있기나 했을까? 나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완벽하게 인지하진 못했다. 하지만 집 밖의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저 너머로 고운 기운이 느껴질 때면 나는 내가 형태를 갖추며 획득하게 된 오감으로 최대한 그 에너지를 받아 품었다. 너무도 따뜻하고 오묘해서 나는 그만 나른해지기도 했다. 그 나른함을 나는 확실히 기억한다.


 그 기운의 정체는 뭘까. 나는 내 집 밖이 가끔 궁금했다. 동시에 집 밖은 두려웠다. 


  시간은 어떤 속도로 흐르는 것일까. 나는 한 번씩 기분좋은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꿈을 꾸면서 때론 웃고 때론 찡그렸다. 가끔 눈을 뜨기도 했다. 하지만 이리 저리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일렁거림 뿐이니 다시 눈을 감는 수 밖에.(심지어 나는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어머, 아기가 지금 눈을 떴네요.”

  “아버님,어머님 아가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봐요. 웃고 있는거 보이시나요?”


 저기 저 너머에서 다정한 소리가 들린다.(그렇다. 나는 그때 쯤 확실히 듣고 있었다!) ‘집 밖은 내 생각보다 안전한 곳일지도 모르지.’ 


 나의 몸은 나날이 비대해졌다. 섬세해진 나는 집 밖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집은 자꾸 커졌다. 하지만 내 몸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은 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만든 말이 아닐까. 


“원아, 엄마 아빠야. 원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지? 힘내. 엄마,아빠도 힘낼게. 사랑해”


‘엄마,아빠?’


  나는 이제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과 나는 벽을 사이에 두고 교감하는 듯도 했다. 나는그들이 나의 안위를 궁금해하며 문을 노크할 때를 기억한다. 발이나 손을 슬쩍 밀어보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그들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엄마, 아빠’라는 그들은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또 무엇일까? 자꾸만 궁금해졌다. 



이 곳


 나는 ‘그것’을 알기 위해서 “태어나기로” 결심했다.


 “응애” 


  후회가 밀려왔다. 집 밖의 세상은 후회와 고통. 그들이 사는 곳은 나에게 적당하지 않았다. 숨쉬는 것조차 낯설고 척박한 곳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기운과 추위, 과할 정도로 밝은 빛...모든 것들은 내가 있던 그 곳과 달랐다. 나는 어지러웠다. 하지만 태어났으니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젠 ‘사랑’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줄 그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은 어디있는 걸까. 


  낯선 이들이 축축해진 내 몸을 익숙한 듯 닦아냈다. 그리곤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다. 너무 강한 빛 때문에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응애’하는 비명이 나올 찰나 익숙한 기운이 내 몸에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


   “원아, 엄마 목소리 들려?? 나오느라 힘들었지? 수고했어.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해.”


 나는  나와 ‘엄마’의 살갗이 포개지자 갑자기 나른해졌다. 그 이유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려운데


 굳이 설명하자면 ‘엄마’는 나의 집 같아서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곧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매일 반복되었던 익숙한 꿈. 


눈부신 빛의 길을 따라 그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들은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온다. 나도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들은 멀리서 보기에 웃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결국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될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명확한 것은 나는 ‘태어나길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나는 태어났다.



나는 이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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