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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 Sep 29. 2021

오늘 하루 괜찮으신가요?

짧은 소설 3

“〔00시청〕00 30번 확진자 발생/00 17번과 접촉/마스크 상시 착용/아래 링크를 확인 바랍니다.”


화상회의에 참여하고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문자를 확인한 미경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장님, 이번주 업무회의는 원격으로 대체해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내일은 일주일에 1번 합법적으로 외출이 가능한 출근날이지만 미경은 출근을 할 수 없다.

  30번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기 때문이다.

  한국은 7년 전 코로나 펜데믹 사태로 개인의 사적 생활보다는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택했다. 개인의 권리를 침해받는다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여론은 확진자 및 격리대상자들의 동선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를 보게 된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잠잠해졌다. 그 이후 안전문자에는 새로운 링크가 하나 첨부되었다. 이 링크에는 확진자의 동선이 10분 단위로 기록되어 있고 자신의 동선이 확진자의 동선과 겹칠 때 확인 가능했다.


  미경은 코로나 이후 반복되는 펜데믹 상황 속에서 그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중 하나가 3년 전 새 빌라를 매매한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주거 공간’이라는 타이틀을 단 빌라였다. 이 아파트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모든 방역 및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민들의 사용시간을 정확히 파악하여 동선이 겹쳐지는 상황을 최소화하고 사용직후 자동 방역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선진 시스템이었다. 이 때문에 이 빌라의 주민들은 함께 티타임을 가지거나 헬스, 탁구, 골프, 영화 등의 레져를 외출 없이도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감염병 확진을 100프로 막아내진 못하는 관계로 미경에겐 딱히 큰 장점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미경이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넓은 베란다와 테라스였다. 이 공간은 신체적, 정신적 환기를 위한 공간으로 사람들이 광합성을 하며 작은 정원이라도 가꿀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었다. 이는 코로나 이전 일반적인 주거공간과는 역행하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그 어떤 죄책감이나 불편함 없이 자연과 밀접한 상태로 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 빌라는 사각지대 없이 모든 공간을 모니터링하고 원격 조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최고급 방음시설을 갖추고 있다. 긴급돌봄 및 원격수업으로 자녀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이유 때문이었다.


  둥지를 바꾼다는 건 모든 이에게 중대한 사안이다. 미경은 그녀의 선택에 매우 만족했다. 그녀는 때로 자신의 집에 대한 우월감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이 고급빌라의 입주를 위해 받아야 했던 대출금이 떠올라 동시에 괴로워졌다.


“〔00시청〕00 30번 확진자와 2028년 4월 13일 8:30 하나로 편의점 동선 겹침/오늘 15:00까지 아래 주소의 관찰센터로 등록 바랍니다.”


  오늘부터 그녀는 2주 가량 관찰센터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그녀의 아이들은 2주간 정부에서 지원하는 생활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예고 없이 그들을 찾아온다. 하지만 그들은 예상이나 하고 있었다는 듯 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생활이 미경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되기까지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내었나.


  미경은 지금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던 그녀 자신을 떠올려 보았다.

  바쁘고 분주했던 아침 출근길,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보며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일, 차라도 마실까 하며 친구와 교외 약속을 잡던 일, 하원한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던 일, 주말 지인의 경조사에 귀찮아하며 참여하던 일,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던 일, 휴가 기간에 놀러갈 곳을 알아보며 즐거워하던 일, 지역 축제로 빼곡하게 들어선 사람들을 보며 숨이 턱 막혔던 일, 집 앞 광장에서 재잘대는 아이들을 보며 차를 마시던 일. 이런 사소한 기억들 속엔 마스크가 없다.


  미경은 순간 당연했던 일상들이 만화 속 허구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 미경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은 규제와 안전이다. 이렇게 지내온지도 도대체 몇 년 째인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거듭하여 희망을 품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답할 사람 없는 질문은 그녀에게 다시 되돌아 왔다


  미경은 10분 만에 관찰센터 생활에 필요한 용품들을 준비했다. 매해 한 번 정도는 겪는 일이라 익숙해졌다.

“생활 도우미 이모님 오실 테니까 밥 잘 챙겨 먹고~ 엄마가 다 지켜보고 있는거 알지?”

“자기, 또 동선 겹쳐서 격리~ 어째 자기랑 나랑 돌아가면서 이러냐~ 오늘 저녁부터 도시락 배달 오는거 알죠? 들어올 땐 손소독 잊지 좀 말구요~.”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부의 말을 전한 후 신속히 집을 나섰다. 마스크는 이제 한 몸과 같다. 그녀는 격리 대상자를 위해 별도로 구축된 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내려갔다. 벌써 지하 주차장이다. 그녀는 지하 주차장 상황을 모니터로 확인한 뒤 재빠르게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장 마스크를 벗고 가장 가까운 관찰센터로 향했다.


  휑한 보도에 드문드문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표정 없이 걷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닮아 있었다. 저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저들도 나와 같을까? 신호 대기중이던 미경은 갑자기 그들에게 달려가고 싶다. 그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의 마스크를 벗기고 물어보고 싶다. 그들의 진짜 표정을 보고 싶다.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오늘 하루도 괜찮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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