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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 Mar 12. 2022

병상일기 3

2019.4.8

오전 내내 담당의를 목빠지게 기다리다가 또 지쳤다.

옆 베드 할머님은 헛것이 보이거나 치매 증상을 보이기까지 해서 집중치료실로 이동할지 말지의 상황이 반복되었다. 정말 멀쩡하실 땐 나나 간병인과 대화도 나누셨다. 건강하실 땐 베풀기도 참 좋아하시고 심성이 고운 분이셨단다. 간병인이 넌지시 말씀해주셨다.

"자식들이 간병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해서 간병인이 간병을 한다"고. 환자가 이상증세를 보일 때가 있어 이전 간병인이 50일 정도만에 그만 두셨고 새로 오신 간병인 아줌마는 3일 째 밤을 새고 계신다고 하셨다.


오래된 대학병동의 2인실은 너무 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자 베드 위치도 신경전이 엄청나다. 병동 보호자들은 직업간병인들의 행동에 불만이 많았다.


"환자 옆 베드에 있어야 할 간병인들이 자기들 잠 잘 자려고 환자랑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보호자 베드를 두고 자고 다른 환자 보호자가 중간에 끼어 생활해야 해서 어이없다."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님은 대변에서 균이 발견되어 일요일 늦게 1인실(격리실)로 이동하셨다.

"우리집 넓어요. 66평인데~"

이런 말씀들을 앞뒤정황 없이 하시던 할머니. 사람이 죽어갈 땐 자신이 가진 것들이 아무 쓸모 없고 볼품 없는 모양새로 시들어 가는 것 같다. '고통없는 죽음도 참 복이라는 것과 연명하는 삶은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교차했다.

어찌되었든 오후 4시쯤 기다리던 시술을 진행했다. 알고 봤더니 응급실 당직의가 시술을 못했던 이유는 농양이 딱딱해서가 아니라 시술 부위가 어려운 부위여서 시도를 포기했던 것이었다. 무서웠지만 환자가 협조를  해 줘야 빨리 끝난다는 말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려운 부위인데 의사가 괜히 엉뚱한 곳을 찌르거나 재시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까봐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젋은 의사 선생님께서 배에 취 주사를 깊숙이 넣어 마취를 했다. 그 후, 엄청나게 긴 쇠바늘을 내 뱃 속으로 쑥 집어 넣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위로 올린 상태라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따뜻한 액체가 내 몸 밖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어려운 위치(횡경막 부근)의 농양은 다른 교수님께서 오셔서 집도하셨는데 정말  아파서 펄쩍 뛸 판이었다. 참는다고 용을 써서 아픈 어깨가 더 부서질듯 아팠다.


시술이 끝난 후 진료실로 오자마자 진통 주사를 맞고 어깨 진통약을 받아 먹고 나니 나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너무 쌩쌩해졌다.

13여년 전 췌장 수술과 비교해 보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수술과 시술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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