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아과 쌤 Jan 20. 2020

'면역력 강화'의 허상

우리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먹으면 면역력이 강화되나요?"


많은 부모님들께서 진료실에서 하시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변은 한결같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어요. 식사 골고루 하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학원 무리하게 많이 보내지 마시고요." 하지만 이런 대답에 많은 보호자 분들이 어리둥절해하십니다. 여러 매체와 광고에서 '면역력 강화'라는 문구를 걸고 상품을 소개하기에 왠지 저 제품을 섭취하면 우리 아이가 감기에 덜 걸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면역을 강화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건강하게 자라온 아이들은 큰 문제를 일으킬 수준의 질병에 걸릴 정도로 취약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 아이는 감기에 매번 걸리는 걸요. 그러면 면역력이 약한 것 아닌가요?"라고 되묻는 분들도 있지만 정상적인 아이들의 경우 일 년에 6번에서 10번 정도 감기를 앓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매달 감기에 걸리는 셈이니 우리 아이가 자주 아프고 몸이 약한 것처럼 느껴질 법도 합니다.



면역은 '역병을 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즈음과 달리 옛날에는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크게 앓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연두, 결핵, 홍역 등등. 그래서 이런 역병을 피하는 능력이 있으면 면역력이 강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런 전염병들은 정상적인 사람 누구에게나 침범하는 무서운 병원성을 가집니다. 예전에 비해 이런 전염병이 줄어든 것은 위생이 호전되었고, 영양결핍이 줄었으며 예방접종과 항생제가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영양결핍이 있으면 병에 잘 걸리고 또, 병을 잘 이겨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삼시세끼 잘 챙겨 먹는 요즈음 아이들에게서 영양결핍은 드물죠. 균형잡힌 식사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추가로 챙겨주어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식품, 혹은 영양소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무언가 부족하지 않을까, 무언가 더 해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부모의 심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죠.


면역은 균이나 바이러스 등과 싸우는 역할만을 하지는 않습니다. 몸에 불편한 증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알레르기나 두드러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집먼지 진드기, 꽃가루, 미세먼지 등의 외부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올 경우, 면역계가 작용하여 피부에 발진이 생기거나 간지러운 증상이 나타납니다. 다른 예로는 자가면역질환이 있는데 류머티스 관절염처럼 자신의 신체 장기나 기관을 면역계가 헷갈려 공격하는 질환입니다. 이런 면역의 작용을 보면 면역은 무조건 강력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게 조절이 되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면역력 강화’라는 단순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요.


면역력을 측정한다는 특정 검사 또한, 정상적으로 잘 자라서 큰 질환을 앓지 않은 사람들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면역계에 작용하는 세포와 물질은 매우 다양합니다. 이중에 하나를 골라 그 수치를 보고 면역력을 평가하는 것은 정교한 우리 몸에 대한 실례입니다. 그렇게 인체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면역결핍증이라는 병이 있는데, 이 질환에서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면역체계에 문제가 있는 면역결핍증은 감기에만 걸려도 순식간에 악화되어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습니다. 선천적인 문제, 예를 들면 유전질환으로 면역 결핍이 있는 경우는 10,000명 중에 1명 정도로 드물고 교과서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상황에 의심합니다.  


1회 이상 전신 세균성 질환, 패혈증 및 세균성 수막염의 경험이 있는 경우

1년에 2회 이상 심한 호흡기, 혹은 다른 부위의 세균 감염 (폐렴, 연조직염, 농양 등)

전형적이지 않은 부위의 감염 (간농양, 뇌농양)이 생긴 경우

흔하지 않고, 전형적이지 않은 병원균의 감염이 생긴 경우

흔한 병원균 감염이지만 증상이 비정상적으로 심할 경우  


흔히 말하는 '면역력 강화'라는 단어를 적용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아픈 아이들이랍니다.





우리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보충제에 비용을 들여 무언가 더 해주려기보다는 기본적인 것을 충실하게 잘하고 있는지 챙겨주세요. 바로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위생, 정서적인 안정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생아 황달에 대해 알아봅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