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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주세용 Sep 25. 2022

박경리의 토지에 대한 기억

불편한 편의점에서 원주통신을 거쳐 

강원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에 다녀왔다. 최근 읽었던 소설 '불편한 편의점'에 토지문화관에서 글을 쓰던 극작가의 에피소드가 있어 머릿속에 남았나 보다.


토지에 대한 기억 하나.


국문과에 다니던 친구가 방학 때면 토지를 읽었다. 그 책이 그렇게 재미있냐고 물었는데 재미라기보다는 국문과라면 최소한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완독을 해야 한다고. 일종의 의무감이라고 했다. 그렇게 긴 소설을 어떻게 읽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흘러 직장인으로 한창 바쁠 때. 문득 토지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마로니에 북스에서 출간된 20권짜리 토지 전집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가방에 토지를 넣고 다니며 일을 마치면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토지를 읽다가 퇴근했다. 토지 초반부에는 피곤해서 그런지 집중이 잘 안 됐다. 읽는 속도도 느렸고, 페이지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꾸벅꾸벅 졸면서 토지를 읽던 기억. 마지막에 다 읽었을 때 후아 하던 기억.


토지에 대한 기억 둘.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이기호의 '원주통신'이라는 단편을 소개했다. 이기호 작가 본인의 얘기를 자소설 형식으로 엮어낸 것 같다. 어릴 적 박경리 선생과 같은 동네에 살던 작가는 학교에서 박경리 선생의 손자로 알려졌다. 어린 마음에 나름의 허세를 섞어 친구들에게 얘기를 하고 다녔겠지? (덕분에 작가는 성인이 되어 룸싸롱 토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생긴다)


실제 그는 박경리 선생을 본 적은 없다고 한다. 다만 늦은 저녁 선생의 집에서 보이는 얕은 불빛. 그 불빛을 보며 작가는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그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 박경리 선생은 토지 집필을 끝냈다. 그 긴 세월 하나의 소설에 파고든 선생을 생각하며 이기호 작가는 마음이 먹먹해져 마지막으로 선생의 집 앞에서 속으로 인사를 하고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갔다는 얘기.


토지에 대한 기억 셋.


이번 토지문화관에 가서 처음으로 박경리 선생의 젊을 때 모습을 사진으로 보게 됐다. 내가 알던 노 작가가 아닌 젊은 시절의 선생은 멋쟁이였다. 신선했다. 거주하던 집과 집 안의 집필실, 서재도 보게 됐는데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 안에서 그 많은 토지 속 인물을 만들고, 스토리를 만들어 나갔을 작가. 집필실 책상에는 커다란 국어사전이 펼쳐져 있었다. 선생은 글을 쓰며 항상 국어사전을 찾았고, 그랬기에 소설 토지에는 보물 같은 우리말이 담겨있다.


평사리의 최 참판댁에서 시작된 소설 토지. 서희, 길상이, 조준구, 봉순, 송영광,... 그리고 박경리. 지금은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토지 속에 있는 수많은 인물과 스토리는 가슴속에 남아 있다. 때가 되면 다시 평사리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때는 졸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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