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영상 속의 50대 남자는 구름이 많고 날씨가 흐린 날 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
남자는 바닷가 갯바위 위에 불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파도가 쉴 틈 없이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는데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바로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남자가 앉아 있는 갯바위 옆으로 비어있는 참이슬 소주병 4-5개가 뒹굴고 있었고 먹다 남은 것으로 보이는 새우깡과 뚜껑이 열린 참치캔, 나무젓가락이 보였다.
동영상에 나오는 남자는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았는데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낮게 깔리는 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 얘기를 해나가고 있었다.
남자는 검정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 뒤로 보이는 크고 깊은 눈과 흐트러진 흰머리, 이마의 주름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자는 앉아 있었지만 긴 다리와 우람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강낫또씨는 생각했다.
누구지?
도대체 어디서 본 사람일까?
강낫또씨는 영상을 보며 남자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영상을 틀고 5분이 지났을 때 강낫또씨는 온몸에 한기를 느끼며 불현듯 한 남자의 얼굴이 떠 올랐다.
어릴 적 강낫또씨가 좋아하고 따랐던 젊은 남자의 얼굴.
강낫또씨가 ‘창수삼촌’이라고 부르던 남자.
영상에 나오는 남자는 어릴 적 강낫또씨의 집을 풍비박산 냈던 그 남자였다. 27년이 지났지만 창수삼촌의 얼굴에는 젊은 시절의 준수함이 남아있었다.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얼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 남자의 얼굴.
강낫또씨는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떨리던 손이 나중에는 점점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떨림이 심해져 핸드폰을 들고 있을 수 없어 바닥에 내려놓았을 때 강낫또씨의 눈은 심하게 충혈되었고 눈물이 고였다.
창수삼촌 때문에 폐인이 된 아버지.
마트 창고에서 까대기를 하며 일을 하신 어머니.
집안에 붙어 있던 빨간색 압류 딱지.
빚쟁이에 쫓겨 이사 가던 날 새벽 공기의 서늘함.
이사갈 때 1.5톤 트럭 뒤에 쪼그려 앉아 멀어지던 집을 바라볼 때의 서글픔.
이 남자는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50대 사기꾼 남자의 인생 고백’이란 제목으로 영상을 올린 것일까.
“저는 사기꾼입니다. 저는 아주 나쁜 놈이에요. 저 때문에 오랜 시간 힘들어했을 많은 분께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이 영상을 보면서 저한테 욕을 해 주세요. 저는 그렇게 욕을 먹어도 싼 인간입니다.
30년 전 저는 훌륭한 사장님 밑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유도 특기생이었던 저는 운동밖에 모르는 촌놈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습하다가 다친 무릎 때문에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그 후에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안 해본 일이 없을 거예요. 막노동부터 짜장면 배달, 주방에서 설거지, 고깃집에서 서빙, 과일 행상 등등. 하지만 돈이 모이질 않았어요. 하루하루 벌어서 생활하기에도 모자랐으니까요.”
남자는 말을 마치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소주병을 들어 남아있는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는 한숨을 쉬고 잠시 바다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어릴 적 부모님이 왜 그렇게 운동하는 걸 반대했는지 그때 알겠더라고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 유도라는 운동밖에 안 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제 인생의 은인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에 투자하시는 분이었는데 그때 그분 밑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가족처럼 아껴주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 주셨어요. 사장님은 부동산으로 번 돈으로 곧 청바지 공장을 차려서 돌리기 시작했는데 큰돈이 모였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저에게 돈을 관리하게 하셨는데 그때 큰돈을 보며 정신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퇴근 후에 취미로 경마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회사 공금으로 경마에 베팅하고 있었습니다.
한 두 번만 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습관이 되었고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고 말았죠. 제가 모든 것을 관리하기는 했지만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어요. 저는 그 돈을 채워놓으려고 사채에 손을 댔고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불어났습니다.”
남자는 어느새 흐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