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회사마다 사정이 있다

소설

by 봉봉주세용

강낫또씨는 김과장과 커피를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포에버 상사에 입사하고 8일 만에 회사 직원과 나눈 제대로 된 대화였다.


“예전 S사에 다닐 때 구매 담당하셨죠? 그때 저희 포에버 상사랑도 거래가 있었잖아요?”


김과장이 물었다.


“맞아요.”




“당시 저희 회사가 S사에 납품하고 대금 받을 게 있었는데 금액이 꽤 컸어요. 대금 지급일이 며칠 안 남았는데 S사에서 글로벌 결제 기준이 바뀌었다면서 갑자기 많은 양의 복잡한 서류를 요청했어요. 무슨 서약서랑 공정거래 관련 면책 동의서 등등.


제가 기억하기로는 10가지가 넘었어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죠. 근데 어쩔 수 있나요? 갑이 해달라고 하는데. 저희야 을 입장에서 해 줄 수밖에 없었죠. 저희 회사 담당자가 그 서류 준비한다고 일주일 동안 거기에만 매달렸어요.


그리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60일짜리 어음으로 지급한다는 거예요. 저희 회사는 그때 현금이 급했거든요. 담당자가 S사에 전화해서 지급 조건이 갑자기 바뀌는 게 어디 있냐면서 항의하고 사정하고. 제가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담당자는 오죽했겠습니까.”


김과장이 말했다.


“아. 그때 아마 저희 팀 최선길대리랑 통화했을 거예요. 최대리도 어떻게든 포에버상사에 정상적으로 대금 지급해 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던 게 생각나네요. 최대리도 결국에는 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강낫또씨가 말했다.


“회사마다 사정이 있으니까요. S사에서 볼 때 저희한테 줄 대금이 소액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저희한테는 그게 큰돈이었거든요. 사장님은 당시 담당자한테 크게 화를 냈어요. 일 처리를 똑바로 하지 못했다고


담당자는 결국 퇴사했어요. 꼭 그 일 때문은 아니었고 집안일이 있어서 퇴사한다고 했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 담당자가 S사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고 있죠.”


김과장이 얘기했다.


강낫또씨는 그제야 포에버 상사에 입사하고 직원들과 첫 만남 자리에서 왜 그렇게 분위기가 냉랭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대금 지급 조건이 바뀌어서 그렇게 큰 고초를 겪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죄송하네요.”


강낫또씨가 말했다.


“아니에요. 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강부장님이 담당자가 아니었잖아요. 그건 그렇고. 아까 사장님이 얘기하신 거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요. 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라서요.”


강낫또씨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는 사장님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생존하려면 어떻게든 물건을 팔아야 하는 거고. 사장님은 강부장님을 통해 대형 거래선을 뚫으려고 하는 거죠. 강부장님이 사장이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김과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긴 하겠네요. 근데 제가 S사에서 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정으로 물량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서요.”


“알죠. 저희도 다 알아요. 하지만 부장님이 S사에서 일한 게 11년인데. 그 짬밥이 어디 가겠어요? 대형 계약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성의는 보일 수 있는 거잖아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죠?”


김과장은 빈 종이컵을 꽉 쥐어 쪼그라 트리고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김과장은 먼저 일어났고 강낫또씨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강낫또씨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포에버 상사에서는 강낫또씨의 능력이 필요해서 채용한 것이 아니라 강낫또씨의 연줄이 필요했다.


강낫또씨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왜 포에버 상사에서 사장이 1:1로 면접을 보고 바로 그를 채용했는지. 다른 회사에서는 아예 연락이 없었는데 포에버 상사에서는 왜 그렇게 강낫또씨를 원했는지.




강낫또씨는 휴게실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직서를 작성했다. 사유는 일신상의 이유. 강낫또씨는 사직서를 사장실 책상에 올려두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직 점심을 먹기에도 이른 시간이었다. 유난히 맑은 날씨였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어 파란 하늘이 더 파랗게 보였다. 강낫또씨는 터덜터덜 걸으며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낫또씨는 문득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팠다. 그는 지하철역 옆 골목에 있는 ‘할매순대국밥’ 식당에 들어가 시그니쳐 메뉴인 할매순대국밥을 시켰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 앱을 실행시켰다. 유튜브 앱 화면에는 그가 최근에 본 영상을 기반으로 추천 영상이 뜨고 있었다.


‘성공적으로 이직하기’

‘이직 후 회사 적응하기’

‘40대 이직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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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낫또씨는 핸드폰 전원을 껐다. 그리고 순대국밥에 있는 순대를 새우젓에 찍어 먹으며 입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순대의 맛을 음미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순대국밥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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