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 : 어쩌면 우린 홀딱 속았수다 3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31

by chill십구년생guy


똥차를 버려야
벤츠가 온다


다음 날 역시 폭풍 같은 하루가 이어졌다. 전시장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아침부터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나와 친구는 그 거센 흐름 속에서 쉴 새 없이 관람객과 파트너들을 응대하며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예상보다 현장의 반응은 뜨거웠고, 특히 중국 현지 개발사들이 보여준 관심은 유독 남달랐다.



의외로 순수하고 적극적인 중국 개발사 친구들



그들은 우리가 갓 론칭한 ‘갤럭시티(Galaxity)’를 예리한 시선으로 살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유통 방식이나 구체적인 수익 모델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졌다. 비즈니스를 어떤 방향으로 확장할 것인지, 어떤 파트너십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심지어 서버는 어디에 구축해 운영할 계획인지까지—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매우 실질적이고도 진지한 수준의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문득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나 스스로도 더 이상 오프라인 기반의 사업 모델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LBE(Location-Based Entertainment)를 결합한 모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최전선에서 현지 개발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마주하다 보니 나의 관심사 또한 자연스럽게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본류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런 한류는 필요없는데



낮에 잠시 짬을 내어 행사장 근처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VR 테마파크 하나를 발견했다. 불과 어제 저녁, 시내를 샅샅이 뒤져도 보이지 않던 실체가 이토록 허무하게, 그것도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길목에서 툭 튀어나오다니. 반가운 마음이 앞서 홀린 듯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매장 문을 열고 마주한 풍경은 경악스러웠다. 넓은 공간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손님은커녕 자리를 지키는 직원조차 없어 한동안 어색하게 매장 한가운데 서 있어야 했다. 잠시 후, 어디선가 직원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유료 시설인 듯했지만, 내부를 잠시 둘러봐도 되겠냐는 내 요청에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손님이 없으면 하나 뿐인 직원이 땡땡이를 친단 말이냐



공간은 예상보다 넓었고 테마별로 구획도 제법 그럴싸하게 나누어져 있었으나, 정작 알맹이는 비어 있었다. 딱히 신선하거나 눈에 띄는 기술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한쪽 구석에서 익숙한 로고 하나가 내 시야에 박혔다. 국내에서 VR 시뮬레이터를 제작하는 한 대표님의 장비였다. 몇 차례 식사도 함께하고 현장에서도 자주 뵀던 분의 제품이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손님 한 명 없는 중국의 적막한 테마파크 한구석,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한국산 기기를 바라보며 나는 묘한 생각에 잠겼다. 하드웨어는 견고했고 공간 구성도 나무랄 데 없었지만, 그것들이 놓인 맥락은 지독하리만큼 공허했다. 헛된 기대와 왜곡된 정보가 뒤섞인 이 기이한 시장 속에서, 저 장비는 마치 우리 컨텐츠 개발사들이 마주한 서글픈 자화상 같았다. 화려한 ‘중국몽’이라는 무대 뒤편에서 소외된 채 먼지만 쌓여가는 현실을 보는 듯해 가슴 한구석에 씁쓸함이 차올랐다.



여기 씁쓸함 한 잔 추가요



행사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친구와 함께 시내로 향했다. 전날 같은 허탕을 반복하지 않으려 이번에는 통역을 맡았던 현지 대학생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요즘 상하이 젊은 친구들은 도대체 어디서 노느냐”고. 학생은 망설임 없이 ‘신천지(新天地)’를 추천했다. 쇼핑과 맛집, 엔터테인먼트가 어우러진 가장 현대적인 거리이자 상하이의 ‘힙스터’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그래, 내가 찾던 정보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기대감을 안고 도착한 신천지는 소문대로 세련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거리 곳곳은 감각적으로 꾸며져 있었고, 확실히 활기 넘치는 유동 인구가 넘실거렸다. 그러나 정작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VR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가상현실과 관련된 공간이나 콘텐츠는 흔적도 없었다. 어느덧 허기가 밀려왔고, 우리는 통역사가 추천해 준 레스토랑 ‘더 리파이너리(The Refinery)’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 한 잔과 안주를 앞에 두고 둘러본 식당의 분위기는 당시 서울의 가로수길을 연상케 할 만큼 고급스러웠다. 정제된 인테리어와 깔끔한 조명, 그리고 적당한 소음이 어우러진 그곳은 확실히 ‘1선 도시의 심장부’다운 위용을 풍기고 있었다.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괜찮았지만, 하아..



동석했던 다른 회사 대표님은 최근 상하이 VR 테마파크에 자사 콘텐츠를 수출했다며 운을 뗐다. 반가운 마음에 그 테마파크가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은 예상 밖으로 건조했다.


“상하이 저 멀리 외곽 쇼핑몰 구석에 있어요. 그냥 동네 PC방처럼 꾸며진 작은 공간이죠.”


그는 덧붙여 씁쓸한 사실을 전했다. 다들 정부 지원을 받았기에 ‘중국 수출 성공’이라는 거창한 보도자료를 뿌리며 홍보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비즈니스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무늬만 진출’인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었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낮에 텅 빈 테마파크에서 느꼈던 그 공허한 씁쓸함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쳤다. 겉으로 보기엔 거창한 ‘중국몽’의 서사가 실상은 기대와 전혀 딴판인 조각들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결국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상하이의 핫플레이스에서 술잔만 비워내다 숙소로 돌아왔다. 화려한 야경 뒤에 숨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확인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무거운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후일담



상하이 출장에서 돌아온 뒤, 우리는 미련을 털어내고 과감한 결심을 내렸다. 오프라인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신규 개발을 전면 중단함과 동시에, 본사를 경기도에서 대구광역시로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 무렵, 우리는 이미 대구 이전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몇 달 전 친분이 있던 VC의 소개로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와 삼성전자가 공동 운영하는 ‘C-Lab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뜻밖에도 덜컥 합격 통보를 받은 터였다.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구 소재 기업’이어야 했기에 본사 이전은 피할 수 없는 전제 조건이었다.


매력적인 지원금과 투자금, 그리고 다양한 육성 혜택은 분명 달콤했다. 하지만 단지 그 조건만으로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로 회사를 통째로 옮긴다는 건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새로운 터전에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낯선 환경 속에 네트워크를 다시 쌓으며 현장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상하이에서 목격한 시장의 민낯을 곱씹어본 끝에, 우리는 더 이상 ‘중국몽’이라는 신기루와 과거의 영광에 매몰되어 오프라인 프로젝트를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피보팅(Pivoting)의 타이밍이 명확히 찾아온 것이다. 마침 C-Lab 프로그램은 새로운 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체계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었고, 이는 우리가 온라인 기반 플랫폼에 전념하기 위한 최적의 기회였다.


결국 우리는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과감히 접고, 약 두 달 뒤인 2019년 2월 본사를 대구로 옮겼다. 맘모식스의 새로운 도약, ‘시즌 3’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작년 우리가 VR로 전환하던 시기, 오프라인 시장의 선두를 달리며 위세를 떨치던 그 수많은 기업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다음 달 이어지는 여정에서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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