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 : 왜들 그리 다운돼있어 1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32

by chill십구년생guy


과연 우리는
옳은 선택을 한 걸까



디즈니+ 드라마 ‘카지노’의 오프닝에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뜻으로, 아무리 찬란했던 권력도 결국은 저물기 마련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영원한 절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세상을 주름잡던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포털의 상징이었던 야후, 필름카메라의 강자 코닥, 휴대폰 시장을 지배하던 노키아까지. 흐름을 놓치는 순간, 모두가 빠르게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2017년, 우리는 VR이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그중에서도 오프라인 VR 테마파크, 즉 LBE(Location Based Entertainment) 시장은 당시 가장 주목받는 분야였다. 세계 곳곳에 테마파크가 들어서고, 투자도 활발히 이어지던 시기였기에 당연히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후 2년간 전 세계를 돌며 현장을 직접 마주하며, 점차 기대와는 다른 흐름을 보기 시작했다.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손님이 뜸한 VR 매장들, 수익 구조의 한계,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결국 우리는 오프라인 시장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한다.


그렇다면, 그 시절 그렇게 잘나가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세계 3대 게임쇼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대만도 엄청난 인파를 자랑한다



2019년 1월, 대만게임쇼 참가를 위해 친구(대표)와 함께 다시 찾은 타이베이에서 나는 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직접 확인하게 된다.



다시 만난 대만



이번 대만게임쇼 2019도 경기콘텐츠진흥원 공동관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곧 본사를 대구로 옮길 예정이었기에, 경기도 기업 자격으로는 마지막 참가였다. 우리도 우리였지만, 경기도를 떠나기 전에 주관 기관과 담당자에게 의미 있는 성과 하나쯤은 선물처럼 남기고 싶었다. (25화 참고)


그런 마음으로, 당시 대만에서 가장 주목받던 VR 업체를 미리 접촉해 MOU 체결을 시도했다. 단순히 행사에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메일을 보내고, 메시지를 남기고, 지인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접촉을 해봤지만 긍정적인 답변은 오지 않았다. 연락은 잘 닿지 않았고, 사전 조율은 결국 무산됐다. 그래도 어차피 현장에 가는 일정이었기에, 일단 부딪쳐보자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행사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TWTC: Taipei World Trade Center)에서 열렸다. (참고로 이 행사는 이후 점점 규모가 커져, 2024년부터는 난강전람관까지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타이베이에 도착하자마자 행사장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곧바로 시내 중심가인 시먼(西門) 쪽으로 향했다.



시먼 대탐험



시먼은 타이베이 완화구에 위치한 대표적인 번화가로, 흔히 ‘대만의 명동’이나 ‘시부야’로 불린다. 쇼핑, 유흥, 먹거리가 밀집해 있어 젊은층과 관광객 모두가 즐겨 찾는 명소다. 유동 인구가 많고 트렌드에 민감한 지역이기에, 대만 로컬 VR 프랜차이즈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살펴보기에도 최적의 장소였다.


생각해보면 작년에는 야시장이나 행사장 주변만 둘러보다가 시먼엔 들르지 못했다. 이번엔 지난 달 상하이 출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주요 지역들을 사전 조사한 뒤 움직였다. 전시회 일정은 다음 날 시작되기에, 오늘은 현장 분위기를 익히기 딱 좋았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거리 가득한 인파였다. 마치 전체가 야시장처럼 북적였고, 분위기는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게임쇼 시즌답게 곳곳엔 캐릭터 일러스트와 홍보 배너, 게임 트레일러 영상이 넘쳤고, 거리엔 버스킹 공연과 코스튬 차림의 인플루언서들까지 어우러져 시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축제의 장처럼 느껴졌다.



활기로 가득찬 시먼, 그리고 곱창국수와 VR 까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허기부터 달래기로 했다. 시먼에 왔다면 빠질 수 없는 명소, ‘아종면선(阿宗麵線)’으로 향했다. 이곳은 ‘곱창국수’로 유명한 로컬 맛집으로, 방송에도 자주 소개된 곳이다.


국수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아는 면 요리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이었다. 국수와 곱창이 잘게 썰어져 있어 젓가락보다는 숟가락으로 후루룩 떠먹는 방식에 가깝다. 생소한 듯했지만, 한입 머금는 순간 부드럽고 진한 식감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오히려 누룽지탕이나 샥스핀 스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간도 적당하고 감칠맛이 강해, 한국 사람 입맛에도 아주 잘 맞았다. 테이블 없이 다들 거리에서 서서 한 그릇씩 비우고 가는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여 뜨끈한 국물을 후루룩 들이키며 든든히 속을 채웠다.



그치만 VR엔 관심도 없는걸



식사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시먼 일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거리엔 여전히 인파가 넘쳤고, 게임쇼 기간답게 캐릭터 인형을 들고 다니는 게임팬이나 눈에 띄는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코스어들까지 어우러져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찾고 있던 ‘VR’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행히 이곳은 중국 본토와 달리 구글맵이 비교적 잘 작동하는 지역이라, 검색 찬스를 써보기로 했다. 마침 작년까지도 대만을 대표하는 VR 프랜차이즈로 알려진 지점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고, 이번에 직접 만나려던 곳이기도 했다. 기대를 안고 중심가 뒷골목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거리엔 여전히 사람들이 붐볐지만, 그 VR 파크 앞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간판도 휘황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제법 그럴듯했지만,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부러 한참을 서서 지켜봤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커녕 지나가며 눈길 한 번 주는 이도 없었다. 이곳이 과연 대만을 대표한다는 프랜차이즈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를 더 둘러보며 다른 VR 공간을 찾아봤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구글맵을 보고 도착한 또 다른 지점은 이미 폐업한 상태였고, 남아 있는 건 희미한 간판 자국과 낡은 인테리어뿐이었다. 허탈했다. HTC라는 대표적인 VR 디바이스 제조사의 본거지이자, 한때 아시아 VR 시장을 주도했던 대만이 이런 상황이라니. 마치 과거의 영광만 남은 채, 방향을 잃은 듯한 인상이었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속단하지 마라 말이야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게임쇼 일정이 시작되기에, 언제까지고 시내를 떠돌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 저녁은 훠궈(火鍋)로 정했다. 대만은 더운 날씨에도 사계절 내내 훠궈를 즐기는 문화가 있어, 다양한 스타일의 전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숙소 근처 쇼핑몰 건물 안에 있는 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여행의 첫날을 마무리하며, 친구와 함께 늦은 저녁을 겸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한국에선 마라탕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무렵이었다



사실 나는 마라가 입에 잘 맞는 편은 아니다. 특유의 얼얼한 향과 자극적인 매운맛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데 본토에서 먹는 마라는 이상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단순히 맵기만 한 게 아니라 은은한 고소함이 살아 있어, 자꾸 손이 갔다. 배탈 걱정을 잠시 접어둘 만큼 가치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마신 타이완 비어도 훠궈와 찰떡같이 어울렸다. 시원하고 가벼운 목넘김이 얼얼한 입안을 말끔히 씻어내며, 텁텁한 여운을 지워줬다.


식사 도중 자연스럽게 VR 이야기가 나왔다. 상하이 출장 이후 우리는 사실상 LBE VR, 즉 오프라인 기반 사업 비전을 접기로 했지만, 혹시 섣부른 판단은 아니었는지 늘 마음 한켠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이번 대만 출장은 그런 판단을 다시 확인하려는 의미도 컸다. 그리고 첫날 시먼 거리에서 마주한 현실은, 우리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물론 하루만에 속단하긴 이르다. 게임쇼 현장에서 현지 업체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면 좀 더 확실한 방향이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내일을 기약하며 식당을 나섰다.




다음편, '대만 타이베이 : 왜들 그리 다운돼있어 2' 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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