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육일. 멜버른 대학교
멜버른에서의 마지막 날. 지난밤에 캐리어에 짐을 어찌저찌 모두 싸둔 우리는 체크 아웃과 함께 짐을 맡기고 멜버른 마지막 날 구경을 나섰다. 멜버른에서 마지막 날의 루트는 멜버른 대학교와 식당, 카페 한 곳이었다.
멜버른 대학교. 가끔 교환학생 파견 대학 리스트를 기웃거릴 때나 보던 대학교. 우리는 멜버른 대학교에 가기 전에 구글 지도를 통해 이 대학의 크기를 먼저 봤는데, 정말이지 어마무시하게 컸다. 우리 대학교는 캠퍼스가 나눠 있고 내가 다니는 캠퍼스는 서울 종로에 있어서 땅값이나 주변 상권 때문에 좁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전동킥보드가 유행이던데, 우리 학교는 비탈길이 심해서 킥보드는 커녕 오래된 학내 셔틀버스가 다니는 것도 위태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부푼 마음과 부러움을 껴안고 도착한 멜버른 대학교는 예상보다 훨씬 더 고풍스러웠고 평탄했다.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 모습을 아는가. 그만큼 오래되고 예스러운 건물이 눈길이 닿는 곳마다 있는 경험은 또 다른 옛 건물 유적지를 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귀했다.
그리고 그런 건물들 사이에 수영장이 있었는데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더라.
대학 안에 수영장이요...?
수영장이 따로 건물로 작게나마 따로 있다구요...? 순간 호주에서 태어났어야 했다는 억울함과 주위에 알라 빼고 사람이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에 벌러덩 멜버른 대학 벤치에 드러누웠다. 조금 더 어릴 때 해외 대학교를 알아볼 걸... 다시 추억해도 눈물뿐이다.
사회과학대학 건물 벽면이 유리로 된 것까지 확인한 우리는 더이상 봤다가는 여기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밖에 더 들 것 같지 않아 차라리 배를 채우기로 하고 대학을 후다닥 나왔다.
골목을 걸어 큰 거리로 나오니 숙소에서 커피집이 더 멀다는 걸 깨달았다. 짐을 찾기 위해 숙소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순서가 좀 바뀌었지만, 커피를 먼저 마시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트램 길을 걸어 패러데이 가에 도착하자 한적한 길이 나왔다. 반은 실제 주민이 사는 건물인 것 같았고 나머지 반은 상가인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갈 카페인 마켓 레인 커피 앞에 도착하고서도 여기가 맞나...? 싶었다. 건물 측면에 출입구같이 생기지 않은 입구와 그 옆에 벽돌로 지어진 옆면 가운데 뚫린 창문을 통해 주문하고 커피를 받을 수도 있었다. 좁은 거리에 작게 놓인 청록색 테이블 두 개도 나름 운치 있었다.
카페까지 찾아갈 정도면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싶을 수 있겠지만 나와 카페인은 잘 맞지 않는다. 아메리카노는 아직도 안 마시고 커피에는 우유와 캐러멜 소스처럼 무언가 섞어야 한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에스프레소 샷은 복숭아 아이스티에 추가하는 샷 정도...?
그래서 호주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던 롱 블랙이 아메리카노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고서는 알라와 함께 라떼 두 잔을 주문했다. 이후로도 롱 블랙을 마신 적은 없었다.
그렇게 청록색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라떼를 놓고 보니 색 조합이 담백하고 비 올 때의 그것이라 운치 있었다. 톤 다운된 색깔이 주는 안정감이랄까. 생각해보라. 길에는 낙엽이 촘촘히 쌓였고 적당하게 구름이 낀 날씨에 코트를 걸치고 바람도 선선한 가을날 길거리 테이블에 앉아 마시는 따뜻한 라떼. 설정샷 같지만 내 호주 여행은 내내 설정이라도 한 듯한 멋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카페 안 분위기도 라떼 색깔 가구로 맞춰져 있는 심플한 느낌이니 가게 안에서 마시다 밖으로 나와도 좋았을 것 같다.
라떼 한 잔으로 분위기를 즐기며 손을 녹이고서 우리는 밑으로 조금 더 걸어 우리가 첫 끼를 해결할 식당, 유니버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식당이 있는 거리는 우리가 멜버른 박물관을 구경한 셋째 날에 먹은 산 추로 추로스를 먹은 그 거리였다.
치킨 파르미자나로 유명한 곳이라는데 저녁 메뉴라서 우리는 먹지 못했다. 대신에 마리나라와 마르게리타 피자에 음료수 두 잔을 시켜 먹었다. 마리나라는 나폴리타나 소스와 해산물, 베이컨 등을 넣고 볶은 파스타였다. 마리나라와 마르게리타 피자는 그럭저럭하였는데, 사이드로 시킨 청사과 주스가 정말 맛있었다. 사과 주스라기엔 톡톡 쏘는 상큼함이 인상적이어서 요것만 포장하고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우리는 다시 숙소에 도착해 맡긴 짐을 찾아 서던 크로스 역으로 도착했다. 이때가 마침 스파이더맨이 개봉하는 때라 역에서 스파이더맨 홍보 포스터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호주 도시이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긴 멜버른을 등지러 아발론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