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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칠칠 Dec 24. 2020

여행지에서 친구가 취해버렸다…?!

기상천외한 하루의 마무리는 칵테일과 함께


    바닷소리가 들리고, 분위기도 좋고, 자리도 따뜻한 음식점에서 방금 막 튀겨진 오징어 튀김을 먹으며 우리는 시드니를 떠나 도착할 다음 도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귀국 후에 몰아칠 신문사에 대해 수다를 떨기도 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초록창 사회면을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또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나보다 술을 잘 마신다고 해도 알라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다. 그런 알라가 도수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칵테일이라면, 도수가 어마무시하게 높다는 뜻이었다. 왜, 도수가 높을수록 알코올 맛을 못 느낀다고 하지 않는가. 알라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또 뭘 알겠는가. 알라가 나보다 주문한 칵테일을 맛있어하며 마시니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지,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 도수가 40도가 된다는 걸 까마득하게 몰랐다.


    그래도 30여 분 정도 멀쩡하게 대화하던 알라와 나는 밤바람이 꽤 쌀쌀해져 슬슬 일어나야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다.


“-알라야?”


    덜컹, 하며 알라가 앉은 의자가 뒤로 크게 밀어지며 알라가 다시 그 의자로 주저앉았다. 뭐지? 눈이 커진 나는 알라를 불렀지만 그때부터 알라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풀린 눈과 테이블에 엎드린 모습.



알라가 취했다.



“알라야?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어떡하지. 갑자기 일어나려 하니 술기운이 확 올라온 듯한 알라는 호들갑스러운 내 반응에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알라는 나와 신문사를 했을 때도 술에 취한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아서 더 당황했던 것 같다. 게다가 여기는 한국이 아니지 않은가. 여긴 일곱 시간 떨어진 호주다!


    일단 주변에 아무도 없기도 하고, 자는 알라를 억지로 깨워 업어서 숙소로 갈 수는 없으니 알라를 조금 재우기로 한 나는 10분 정도 기다렸다. 정말 미동도 없이 자던 알라가 갑자기 일어난 건 순식간이었다.


“화장실...”


    맞다. 깨어나면 거길 먼저 데려갔어야 했는데. 그 생각과 함께 팔을 허우적거리던 알라의 손과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가 담긴 컵이 부딪쳐 컵이 떨어져 깨졌다.


    쨍그랑!


    그 소리에 조금 더 정신이 든 알라는 화장실을 찾았고 가게 직원이 달려왔다. 일단 알라를 화장실로 보내는 것이 먼저였기에 나는 직원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었고 알라를 부축해 화장실까지 데려다줬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나는 직원에게 플라스틱 봉지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없다는 대답과 함께 자리를 말끔하게 치우고 떠났다. 그 쿨함과 서양의 개인주의에 만세를 부르고 싶은 순간이었다. 유리컵 깨진 소리에도 시선 하나 안 주는 문화라니. 나는 이 기회에 얼른 알라를 데리고 숙소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며 알라의 짐을 챙겨서 알라가 있는 화장실로 호다닥 달려갔다.


“알라야, 괜찮아?”


    아무리 괜찮냐고 물어봐도 영 대답이 없어서 걱정스러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30분이 지난 뒤에 정말 멀쩡한 얼굴로 나온 알라는 좀 더 개운한 얼굴이었다.


“다행이다. 속이 좀 편해? 너 여기서 30분이나 있었어...”

“30분? 진짜?”

“그렇다니까? 얼른 가자. 숙소 가서 쉬어야겠어, 진짜.”


    아직도 알라는 30분이나 시간이 달려가 버린 것에 얼떨떨해한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한 번 필름이 끊긴 적이 있는데,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것 같은데 20분이 지나있었다. 알라는 나보다 더 오래 그랬으니 더 당황했을 테다.


    아무튼 다리에 힘이 빠진 듯한 알라와 천천히 걸어 음식점에서 나온 우리는 무슨 정신으로 숙소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바닷바람이 점점 세져서 그 덕에 나도 화끈거리는 볼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종이 가방이 파라솔 위에 내던져지고, 갈매기에게 치킨 뜯기고, 취한 친구 부축이라니.


    그날은 정말이지 인생에 있어서 기상천외한 경험은 다 해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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