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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칠칠 Dec 27. 2020

나를 돌아보게 한 오페라에 대한 이야기

칠월 십삼일 일기. 오페라 '안나 볼레나'


    여행을 하면 나에 대해서 한 가지씩을 알게 된다. 지난 교토 여행에서는 내가 혼자서는 정리정돈을 잘한다는 걸 알게 됐다. 혼자 있을 때나 하는 거라 평생 남들에게 보여줄 일은 없다.


    시드니 여행을 와서는 난 내가 가장 행복할 때 행복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상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행해지고자 하는 상상은 아니고, 그냥 이러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다. 오지 않았다면?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겠지. 오페라를 보지 않았다면?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밥을 먹었겠지.


    그랬겠지, 그랬겠지, 그랬겠지...


    <안나 볼레나>를 봤다. 왕비 안나가 왕에게 사랑을 잃고 미움을 받아 죽는 오페라였다. 안나는 마지막에 미쳐버린다. 하지만 끝내 명예를 선택하며 왕비로서 죽는다. 안나는 그녀가 홀로 감옥에 있는 순간, 처형장으로 향하는 순간에 미쳐 환영을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처형장으로 보내버린 헨리 8세와 결혼하는 광경이다. 그녀가 헨리 8세의 사랑을 계속 받았더라면 아름다운 왕비로 계속 존재했지 않았을까.


    담백한 가정은 뒷맛도 깔끔하다. 나는 그래서 극의 인물이 처했을지도 모를 행복한 상황을 그가 가장 불행할 때 하고 내가 행복할 때 그 행복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을 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불행할 때 대처를 잘할까. 그건 모르겠다. 다만 대처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불행은 미리 생각해보지 않는 이상 잘 대처할 수가 없다. 일상에서 불행을 생각해야 한다. 어렵다. 나는 행복할 때 불행을 떠올리는 게 더 쉬운 사람이라서 그런가.


    두 번째 여행에서 나의 두 번째 면모를 발견했다. <안나 볼레나>라는 오페라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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