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칠칠 Jan 01. 2021

목이 뒤로 꺾인다면 이런 느낌일까?

칠월 십육실. 안작 스퀘어


    몇 주 전부터 한국 길거리에 자주 보이는 킥보드가 있다. 따릉이가 나오고 나서부터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우리 동네에만 3종류가 보일 정도로 전동 킥보드가 정말 많이 놓여있다. 그만큼 많이 이용한다는 뜻이겠지.


    그 3가지 전동 킥보드 중에서 가장 익숙한 것을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lime이다. 흰색, 연두색, 검정색으로 칠해진 이 전동 킥보드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처음 만나 브리즈번 이동 수단을 책임져줬다. 오늘은 그 전동 킥보드로 브리즈번 두번째 날을 마구 누빈 이야기다.


    만족스럽게 브런치를 먹은 알라와 나는 엘리자베스 거리로 나와 브리즈번 북쪽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과연 번화가 중심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 브리즈번 시청이 왼편으로 보였고 널따란 평지 도로에 그때 당시에는 처음 보는 킥보드가 이곳저곳에 놓여 있었다. 우버도 전날 처음 이용해본 대학생이 라임 킥보드에 대해서는 뭘 알고 있겠는가! 알라와 나는 일단 그 킥보드는 제쳐두고 타운 홀과 안작 스퀘어를 향했다.


    타운 홀은 시청 근처에 있는 시계탑 전망대를 말하는데, 사실 거기에서는 별로 볼 건 없었다. 다만 시드니 시청사를 들어가 봤다면 이렇게 생겼겠지, 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었다는 점...? 그 외에는 그동안 본 다른 빅토리아 시대 건물들과 주는 느낌이 비슷했다.





    그보다 좀 더 추천하고 싶은 장소는 안작 스퀘어다. 언뜻 보면 광장일 것 같지만 활기참을 목적으로 세운 광장은 아니고,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이라고 한다. 그 광장 맨 위에는 마치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듯한 화로가 있는데, 그 앞에는 이렇게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알라와 내가 갔을 때는 사람이 두 세명 밖에 없어서 괜스레 경건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안작 스퀘어는 그리스 신전 같은 화로에서 내려오면 양쪽으로 대리석과 같은 돌로 만들어진 의자와 나무들이 늘어져 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대리석 의자에 앉아 사진도 남겼다. 복장을 보면 알겠지만, 무릎 치마를 입어도 쌀쌀하다 정도로 느낄 만큼 겨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날씨였다.


    브리즈번에 있는 타운 홀과 안작 스퀘어보다 좀 더 위로 가면 퀸즈 플라자 쇼핑몰이 나온다. 이곳도 번화한 도시답게 여기저기에 다양한 종류를 파는 쇼핑몰이 있었는데 알라와 나는 쇼핑이라면 멜버른과 시드니에서 질리도록 하고 온 참이라 나중에 브리즈번을 떠날 때 구경하기로 하고 아까 궁금했던 바로 그 전동 킥보드가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한국에 있는 전동 킥보드는 킥보드 하나만 덜렁 있지만 호주에 있는 킥보드는 킥보드마다 그 손잡이에 안전모가 하나씩 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이 킥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이 안전모를 보고 한국에 돌아오니 한국 lime에는 안전모가 없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아무튼 처음 이 킥보드를 보고 나니 한번 타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친절하게 3줄로 요약된 킥보드 탑승법을 읽고 lime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카드를 등록한 뒤에 lime 킥보드에 붙은 QR코드를 스캔했다. 탑승법은 한국과 똑같지만 교통수단으로 일반적인 버스나 지하철이 아니라 킥보드를 이용해보는 건 처음이라서 괜스레 두근두근 떨렸다.


    하지만 뭐든 처음이라면 버벅거리는 법. 킥보드도 연결했고, 안전모도 제대로 썼고 이제 킥보드가 자동으로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이게 참 마음처럼 잘 나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잘만 쌩쌩 타는데 우리만 한 5분 정도 발로 킥보드를 미는 웃픈 상황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 기계가 앞으로 가는가, 하고 열심히 설명서를 다시 읽어보니 발로 킥보드를 세게 앞으로 굴리고 앞에 있는 브레이크로 착각했던 손잡이를 꾹 누르면 앞으로 자동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당연히 어릴 때 탔던 수동 킥보드를 생각했던 나는 손잡이가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이라는 점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세 번의 실패 끝에 다시 발을 구르고 손잡이를 꾹 누르니,



와, 급출발해서 목이 뒤로 꺾이는 것만 같더라.



    억,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앞으로 출발하는 킥보드의 기세가 무시무시해서 급하게 킥보드 뒤끝에 위치한 브레이크를 밟은 나는 헐레벌떡 두 발을 킥보드에서 떼어냈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급출발해도 되나? 속도에 적응을 못 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일단 결제는 했으니 돈이 아까운 마음에 출발을 계속 시도했다. 그 모습을 뭐라고 묘사해야할까? 닭이 앞을 나아갈 때 목을 앞으로 뺐다가 뒤로 다시 집어넣는 그 모습이다. 내 몸은 완전히 닭의 머리처럼 급하게 앞으로 쏠렸다가 다시 얌전하게 뒤로 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래도 몇 번 닭 머리처럼 구니 어느 정도 손잡이를 쥐어야 안정적인 속도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슬슬 감이 왔다. 알라도 나와 마찬가지로 적응해서 우리는 서로의 속도에 맞춰서 브리즈번의 널따란 인도를 lime 전동 킥보드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로마 스트리트 파클랜드로, 브리즈번 북쪽에 위치한 커다란 공원이었다. 경사가 꽤 높은 고지대에 있는 공원이었는데 lime 킥보드를 타니 슈웅, 하고 문제없이 언덕을 올라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속도감은 최고였는데, 이렇게 빠른 속도를 좋아하는 내가 과연 운전면허 소지자가 된 것이 맞을까? 라는 새삼스러운 고민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빠르게 달려 언덕을 오르는 과정 자체가 마음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해줬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10분도 채 타지 않았는데 영수증에 청구되는 8달러라는 금액을 보고 또 탈 일이 어지간해서는 없겠다,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가격이 정말이지, 여행만 아니었다면 일상용으로 타서 지불할 법한 금액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여행을 온 거고, 탈 때 그 상쾌한 바람과 가슴이 뻥 뚫리는 그 기분은 쉬이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도 딱 한 번 lime 전동 킥보드를 이용해본 적 있다. 물론 브리즈번보다 좁은 인도와 밀집된 사람들을 뚫기에는 그 속도가 너무 무시무시해서 3분 타고 바로 관뒀지만 말이다. 그리고 킥보드에 막 탑승하고 나면 닭 머리처럼 이동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어쨌든 그 이후에도 브리즈번에서 전동 킥보드를 한 번 더 타긴 탔다. 공원 잔디에 드러누워 알라와 잡담을 한 뒤에 출출해진 배를 채우러 다시 공원을 나와 번화가로 이동할 때 이용했다. 그 이후로 탈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브리즈번에서만 경험한 독특한 경험이 돼 즐거웠고 상쾌했다.

작가의 이전글 멜버른 먹방 일기 (5) 칠리?? 스크램블 에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