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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칠칠 Jan 02. 2021

브리즈번 보타닉 가든에서 피크닉

칠월 십팔일. 브리즈번 보타닉 가든


    브리즈번의 북쪽과 남쪽에는 커다란 정원이 하나씩 있다. 북쪽에 있는 정원은 어제 다녀온 로마 스트리트 파클랜드고 남쪽에 있는 정원은 오늘 방문할 브리즈번 보타닉 가든이다.


    이름부터 보타닉이 들어갔으니 식물원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그냥 사이즈만 평범하지 않은, 내용물은 일반 정원과 큰 차이점이 없는 정원이었다. 생각해보니 시드니에서도 커다란 보타닉 가든이 있었는데 그곳을 방문하지 못해 그 아쉬움을 브리즈번에서 달래보고자 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던 것 같다.


    이 보타닉 가든은 숙소에서부터 4블록 정도 떨어져서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다음날도 날씨가 환상적이어서 소풍을 해보고 싶었던 알라와 나는 어떤 음식을 사서 소풍을 나가면 좋을까, 고민했다. 초등학생 때 나가던 짧은 소풍을 빼면 거의 10년 만에 해보는 소풍이었다.


    소풍에서 먹을 걸 사러 퀸 스트리트에 가보니 여러 가지 매대에서 다양한 포장 음식을 팔고 있었다. 호주에서 드디어 처음 보는 듯한 맥도날드부터 호주 어딜가나 많은 스시집까지. 그러다가 스시집 매대에서 여러 가지 토핑이 올라가 있는 유부초밥을 보고서는 이거다! 싶었다. 초밥이야 호주에서 몇 번 먹어서 감흥이 별로 없다지만 유부초밥과 함께라면 언제 먹어도 오케이다!


    거기에다가 멜버른에서 먹은 기억을 마지막으로 희미한 과일, 체리도 한 팩 사서 천천히 공원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어제 탄 lime 킥보드가 듬성듬성 보여서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평일에 방문한 보타닉 가든에는 사람이 적어 좋았다. 드문드문 가끔가다 두 세 명이 보이는 정도라 우리가 공원 한 켠을 전세 낸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공원을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 아침 겸 점심으로 사 온 초밥을 먼저 먹기로 한 우리는 소풍을 위한 적당한 자리를 찾다가 진짜 소풍할 때 앉는 좌석을 찾아 그곳에 냉큼 궁둥이를 붙였다.





    우리가 산 초밥은 연어 초밥, 모둠 초밥, 참치 마요네즈 유부초밥이었다. 우리가 사 온 초밥집의 장점은 포장하면 미소 된장국도 추가로 포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쭉 초밥을 늘여 찍은 사진은 그야말로 쨍한 색감을 자랑하는 원색의 유화 같았다.





    다양한 종류로 구성된 모둠 초밥부터 알라와 나 둘 다 좋아하는 연어 초밥에 유부초밥도 반으로 열심히 갈라 먹었더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초밥이 다 사라져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짭짭거리며 입맛을 다신 나는 미소 된장국으로 마저 입가심을 하고 후식으로 사 온 체리를 꺼내 들었다. 그 체리도 얼마 못 가서는 체리 대신에 체리 씨앗으로 플라스틱 용기가 가득 차버렸지만, 그래도 10년 만에 한 소풍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배도 채웠겠다, 이제 슬슬 보타닉 가든을 둘러볼 체력이 생긴 알라와 나는 천천히 공원을 한 바퀴 걷기 시작했다. 보타닉 가든은 그 아래로 브리즈번 강을 끼고 있는데, 그 강을 따라서 천천히 걷는 것도 꽤 괜찮은 산책 경로였다.


    그 괜찮은 산책 경로로 가기 전에 우리는 정말 커다란 나무를 발견했는데, 햇살도 그 나무의 그림자가 멋지게 생길 각도로 적당하게 내리쬐고 있어서 여기 나무 밑에 앉는다면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침 어제 알라가 숙소 근처 서점에서 산 원어 책을 갖고 나와서 그 책을 소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워낙 커다란 나무라서 전체적인 모습을 담아낸 사진도 멋있을 것 같고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며 사진을 찍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을 것 같았다. 좋은 피사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사진사로서의 욕심이 불쑥불쑥 드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첫 번째, 전체적인 모습을 담고 싶은 욕심은 나름 멋지게 사진에 담겼다. 필터 효과를 준 것이지만 그 외 처리는 하지 않았다. 저렇게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은 브리즈번 날씨가 준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정가운데에 나무를 맞추는 것도 좋지만 조금 오른쪽으로 틀어서 찍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 각도로 알라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기도 했다. 이 사진 역시 내 마음에 쏙 든다.





    그 외에도 책을 소품으로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해가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책으로 얼굴을 덮어 냅다 누워버린다거나, 책을 읽는 자세를 취한다거나, 얼굴 반쯤을 책 위로 빼꼼 내미는? 햇살이 쨍쨍하고 나무 그늘 아래는 시원하니 이런저런 상상력이 마구마구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사진 콘테스트를 잠깐 즐겼던 알라와 나는 브리즈번 강변을 향해 걸었고 그 강변을 따라서 걸었다. 하지만 오래 걷진 못했는데 강변이라고 바람이 꽤나 쌀쌀하게 불었기 때문이다. 호다닥 강변에서 도망치듯 나온 알라와 나는 다시 보타닉 가든 중심부를 좀 더 걸었고 그대로 보타닉 가든을 나와서 근처 상점가를 구경하다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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