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칠칠 Jan 08. 2021

호주에 찍고 온 첫 번째 마침표.

칠월 이십삼일. 골드코스트 해변가


    호텔에서 네 번째 체크아웃을 할 때만 해도 호주를 떠나는구나, 라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여행이 끝나지 않았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호주에 왔을 때처럼 일본을 하루 경유해 가는 일정도 여행의 일부분이니까.


    아니면 열차를 타고 공항으로 하루 먼저 가는 발걸음을 자꾸 느리게 만드는, 나의 무거운 캐리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행기를 놓칠까 봐 미리 가는 공항이지만 저녁 늦게 출발하지만 않는다면 언제고 늦지 않은 시간이 도착하는 만큼, 캐리어를 끌고 가는 발걸음은 자꾸 더뎌만 갔다.


    캐리어를 호텔 바로 앞까지 끌고 갔다가 우리는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가 캐리어를 호텔에 맡겼다. 그래봤자 2시간 정도 맡기는 게 고작이었다. 2시간 만이라도 다시 골드코스트 해변가를 다녀오고 싶었다.


    호주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조차 날씨는 완벽했다. 차라리 비라도 추적추적 오면 얼른 공항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텐데, 여행 내내 날씨는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푸르기만 했다.



    햇살 아래서 다시 보니 골드코스트 해변가는 백금에 가까운 색이었다. 쨍한 햇살에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새하얀 구름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매번 구름 없이 깨끗한 하늘만 봐서 그런 하늘만 최고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선녀라는 말처럼, 익숙하게 보아온 구름이 귀했던지라 그것도 나름 특별하게 다가왔다. 돌아가는 한국에서는 새하얀 구름을 고개 들어 볼 일이 없어질 거라 더 마음에 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월 초인데, 눈이 온다는 이야기에 잠깐 창가로 하늘을 본 게 오늘 하늘을 본 전부였기 때문이다.



    호주 자라에서 산 두 번째 후드티를 입고 알라에게 마지막 원샷을 부탁했다. 그동안 잘 먹은 티가 나기도 하고, 부지런하게 돌아다니진 않았다는 반성이 조금 드는, 통통한 내 모습.


뭐 어떤가. 사진에서 활짝 웃고 있기만 하면 다 된 거지.






    사진도 찍고 신발 안에 들어간 모래도 털고 나니 허기가 진 알라와 나는 마지막 브런치를 먹고 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미리 말해둔 것처럼, 골드코스트에서 먹은 브런치를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맛이 없어서 성공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고, 이전 도시에서 먹었던 브런치가 줬던 맛있음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달링 하버에서 먹었던 팬케이크와 맛이 똑같았다. 그것보다 좀 더 텁텁한 정도? 특이한 점이라면 위에 아이스크림 한 스쿱이 올려져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팬케이크가 흐물흐물하게 느껴져서 차라리 올리지 않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래서 팬케이크까지 먹고, 캐리어를 돌려받고, 열차를 타고 브리즈번 국제 공항에 도착한 알라와 나는 거의 12시간 정도를 공항에서 지새웠다. 잠을 자기도 했고, 유심에 남은 데이터를 기어이 다 쓴 나는 와이파이에 연결해 유튜브를 보기도 했다.


    공항 밤샘은 또 처음이었는데, 아직도 남은 감상은 한 번이면 충분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우리처럼 비행기 출국 시각이 새벽 1시나 2시처럼 저녁까지 놀고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면 해볼 수 있는 선택이지만 한 번 하고 나면 차라리 웃돈을 더 얹고 더 나은 시간대로 변경했을 것이다. 처음 해 본 경험치고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그날따라 공항 이용객이 적었고 우리처럼 공항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여서 그렇게 남들 시선이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천 캐리어에 싼 짐을 다시 정리하고 닫으려는 중국 가족분의 캐리어가 도저히 닫히지 않다가 결국 여러 물건이 쏟아졌다. 그 쏟아진 물건은 의자에 누워있던 내 자리에도 왔는데, 그 물건을 주워다 드리며 그분의 캐리어를 꾹꾹 눌러 지퍼까지 겨우 닫아드린 적이 있다. 우리처럼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가며 중국어와 영어로 고맙다고 인사하셨는데 그게 또 나름 뿌듯했다.


    그렇게 호주에 가던 전날 밤이 비현실처럼 다가왔던 것처럼, 비행기에 올라 비가 추적거리는 일본 국제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정말 나의 호주 여행이 막을 내렸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성큼 다가온 D-1, 그리고 마지막 사부작거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