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이십사일. 정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 치바현으로 돌아왔다. 7시간 비행 뒤에 정말 떠났다는 감각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는 캐리어를 찾기 위해 공항을 휘젓고 다녀야 했다.
알라와 나는 캐리어를 되찾기 위해 컨베이어 앞에 섰지만, 그곳에는 불조차 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익숙하게 사람들은 조그만 기내용 가방만 들고 출구로 나가버리는 바람에 물어볼 사람도 딱히 없었다. 분명 여기가 콴타스 항공에서 캐리어를 내리는 곳이 맞는데, 불이 켜지지 않았다니. 10분 정도 공항을 배회하던 알라와 나는 내부에 있는 안내 데스크를 찾아 왜 캐리어를 내리지 않는지 물어봤고 콴타스에서 바로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로 짐을 옮기는 일정이라 그렇다는 답변을 받았다. 경유하는 비행기라면 캐리어를 내리지 않을 수도 있구나. 어쨌든 알라와 나의 짐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한 우리는 기내용 가방을 갖고 공항을 나섰다.
두 번째로 경유한 일본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추억이라면 또 비가 내렸다는 사실이다.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린 건 아니고, 우리가 또다시 첫 경유 때의 악몽을 스멀스멀 느낄 때, 그러니까 우리가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을 때 얕은 빗줄기가 오기 시작했다. 어쩜 이렇게 이 여행의 수미상관이 딱 들어맞을 수 있는 건지. 숙소 근처를 빙빙 도는 것도, 그 앞을 맴돌다 지쳐버린 나머지 잠시 편의점에 들러 저녁으로 먹을 간단한 음식을 사 오는 것도, 그리고 얇은 빗줄기가 내리는 것도.
다행히도 이번 숙소에는 호스트가 상주해 계셔서 우리는 메시지를 보내 숙소 입구를 오래 걸리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일본식 숙소라는 이름을 가졌던 이 숙소는 어느 노부부가 운영하는 주택식 숙소였다. 1층을 여행객에게, 2층을 노부부가 사용하는 구조였다. 우리에게는 1층 4인실을 주셨고 그날 이용객은 우리 둘 뿐이어서 우리는 마음 놓고 거실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호스트 중 한 분인 할아버지께서 이용 방법을 천천히 설명해주셨다. 일본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능숙하게 설명하시는 모습이 멋있었다. 이용 방법을 알려주신 후 편하게 지내라며, 그리고 방문객이 일지를 남길 수도 있다는 작은 이벤트를 알려주신 할아버지는 2층으로 유유히 올라가셨다.
방문 일지. 이곳에 머무른 이용객이 다음 이용객을 위해 남기는 일기였다. 벌써 한 권을 다 채워 두 권이 되어갔던 그 일지는 아마 지금쯤이면 4권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찬찬히 방문 일지를 넘기던 알라와 나는 준비해주신 펜으로 우리가 다녀갔다는 짤막한 일기 한 줄을 적어 내려갔다.
훈훈해진 마음처럼 든든하게 배도 채운 우리는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고 비행기에서 뒤척거리느라 불편했던 몸을 따뜻한 요 위에 뉘어 쉴 수 있었다. 다음 날 호스트께서 공항으로 가는 JR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노라 인사드렸다.
JR을 타는데 웃픈 일이 있었다. 일본을 대여섯 다녀와도 여전히 교통수단에는 버벅거리기 일쑤였던 나는 아직도 JR 열차에 있는 VIP 칸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미리 예매해야만 탈 수 있는 칸인데 구분을 하지 못해 지난 일본 여행에서 일반 칸으로 이동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라고 알라에게 우스갯소리를 하던 중이었다.
“실례지만, 표를 보여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라? 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당연히 표가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알라를 끌고 들어간 그 칸은 VIP 칸이었으니까!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했던, 나서지 말자는 그 교훈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잔뜩 부끄러워서 스미마셍을 연발하며 일반 칸으로 도망치듯 자리를 옮기는 나와 그런 나를 보며 한참을 웃는 알라가 있었다. 알라가 재밌다고 생각해줘서 망정이지, 그야말로 꼴값이었다.
JR은 순조롭게 나리타 공항으로 도착했고 우리는 아시아나 비행기에 별문제 없이 탑승해 2시간 비행 끝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큼지막하게 보이는 한글과 빵빵하게 들려오는 한국어 안내 소리. 여기가 호주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26일간의 여행에 커다란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