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칠칠 Jan 10. 2021

그래서,
이 여행을 다녀온 이유를 말하자면.

그럼에도 아직 나는 호주에 있는 것만 같다.


    3주가 넘는 여행길의 마지막은 떠났던 것처럼 담백했다. 호주와 한국의 시차는 2시간밖에 나지 않아 시차 적응할 필요도 없었고, 경유지인 일본은 아예 시간도 똑같으니 돌아와서 느낀 신체적 피로는 집이 아닌 곳에서 한 달은 보냈다는 약간의 힘듦이 전부였다.


    사실 이 여행을 돌아볼 시간도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귀국한 수요일 이틀 뒤부터 학보사 부서별 트레이닝을 맡아 시작해야 했고 당시 하던 대외활동에서 고궁 해설도 주말부터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학보사가 끝난 뒤에도 2020년에 들어서 대외활동의 장을 본격적으로 맡아 진두지휘해야 했고, 코로나 때문에 매번 바뀌는 상황에 대처해야 해서 작년 일기장 같은 건 들춰볼 생각도 못 했던 게 사실이다.


    원래 휴가 떠나기 며칠 전이 가장 바쁘고 휴가 다녀온 뒤가 가장 정신없는 때 아닌가. 휴가 때 해둘 일 미리 해두고, 휴가 때 쌓인 일을 다녀온 후에 처리해야 하니까. 비록 일은 아니었지만 거의 직업처럼 했던 학보사라서 그런지 그런 직장인의 비유가 더 와 닿는 것 같다.


첫 번째 도시, 멜버른의 전경


    그렇지만 ‘아, 그때 좋았지!’라고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건 멋진 경험이다. 그 경험을 내가 번 돈으로 친구와 다툼 없이 다녀왔다면 더더욱 좋은 기회고. 호주에서 귀국한 뒤에 알라와 함께 학보사에서 밤을 새운 일이 정말 많았는데, 우리는 그때마다 버릇처럼,


아, 호주에 있을 때는 지금쯤 이랬을 텐데!


라고 말하곤 했다. 불평한 건 아니다! 그때 그렇게 빡세게 일하는 건 나에게는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우리가 공유하는 추억을 다시 곱씹고 지금처럼 예전에도 이렇게 열심히 했기에 그때의 추억이 더 멋졌다는 걸 돌려 말하는 셈이었다. 그런 멋진 추억을 하나 더 쌓기 위해서는 지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서로를 향한 격려였다.


두 번째 도시,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사실 지금도 알라와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한다. 한 번 더 호주에 갈 수 있다면 이런 걸 할 텐데. 호주 말고도 다른 여행지를 다녀와 보자. 잠깐씩 다녀온 일본을 먼저 가보는 건 어떨까? 메신저로 짧게 보이는 문장인데도 더없이 설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쩌면 작년에는 공항에 가본 적이 손에 꼽아서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여행을 시작하려는 마음 역시 가볍다. 하고 싶으니까. 가고 싶으니까. 가서 다른 문화를, 내가 그곳에 속해있지 않는다는 해방감을, 낯선 상황에서 방황하는 그 느낌을 다시 한번 더 느끼고 싶으니까.


    아니다. 이런 이유도 다 거추장스럽다. 좀 더 줄여보자. 줄인다면.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으니까.


    그게 내 모든 여행의 시작이었다.


세 번째 도시, 브리즈번의 보타닉 가든


    무언가 커다란 시간이나 노력을 쏟기 전에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은 ‘왜?’인 것 같다. 왜 호주에 가고 싶었어? 왜 3주씩이나 다녀오고 싶었어? 왜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경로를 선택했어?


    안타깝게도 나는 그 질문 대부분에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답을 들은 엄마도, 친구들도 김이 빠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그런 표정을 짓게 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유를 만들어야 했을까.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설명을 덧붙여야 했을까.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런 질문에 모든 이유를 덧붙이지 않으려 한다. 다녀오고 싶으니까 다녀온 거다. 호주인 이유? 없다! 엄마의 지인이 아르헨티나에 있어도 나는 아르헨티나로 갔을 거다. 3주 다녀온 이유? 가장 싼 비행기 표 가격에 맞추다 보니까? 남에서 북으로 가는 경로를 짠 이유? 아 그것도 비행기 값이 가장 저렴해서다.


    시시하고 짧은 대답. 그렇지만 가장 이 여행다운 대답.


    그래서, 정말 누군가 ‘그 여행, 왜 간 거예요?’라고 물어온다면.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이 여행에 가장 어울리는 대답을 해드리리라.


마지막 도시, 골드코스트의 해변가


작가의 이전글 귀국길에 있던 에피소드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