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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칠칠 Jan 12. 2021

좌우명 YOLO 시작점, 교토

코로나 없는 시절에 다녀왔던 여행이라 전생의 기억 같습니다.


가끔은 혼자 떠나고 싶은 때가 있다.



    무슨 바람으로 갑자기 비행기 표를 혼자 사고 어디서 묵을지 정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자만했던 건지, 너무 답답했던 건지... 아니면 몇 년째 보지 못했던 벚꽃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고, 내 생일은 하필 중간고사 시즌이어서 생일도, 벚꽃놀이도 챙기지 못한 몇 년이 한이 됐나 보다.


    혼자 다녀온 일본 여행도 호주 여행처럼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대학생이 된 첫 해에 세 번 다녀온 일본 여행은 한일 경기가 열리면 당연히 한국을 응원하는 그런 마음은 잠시 접어두게 할 만큼 내 취향이었다.


    내 취향이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이방인에게 굉장히 친절하고 상냥한 나라에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지낼 수 있다는 해방감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게다가 시차도 없고 비행기도 2시간 만에 도착하는 짧은 거리에 음식까지 내 입맛에 딱 맞으니 무엇이 더 부족할까. 예상하건대, 대학교 1학년 때 일본을 주구장창 다녀왔던 그 경험이 다음 내 생일에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일본 여행을 결정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준비하는 일본 욜로 여행이 시작됐다. 알바하며 매 달 일정 금액의 돈을 따로 모아 두고, 가고 싶은 일본 도시에 벚꽃이 언제 가장 활짝 피는지, 그 기간에 대학 강의는 몇 개 정도 빠지는지, 그때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없는지 등등. 돈뿐만이 아니라 일정을 정리하고 누구도 모르게 처리하느라 혼자서 바빴던 나날이 지나갔다.


    세 달 여간 열심히 계획을 세워 나는 4월 첫째 주 금, 토, 일에 2박 3일 여행을 떠나는 계획을 세웠다. 장소는 일본 교토. 교토는 오사카 위쪽에 위치한 도시로, 경주처럼 도시 전체가 문화재다. 200개가 넘는 사찰이 있는 도시인만큼 그야말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생 때부터 경복궁 등 여러 고궁에 대해 배우고 다닌 적이 있어 과연 다른 아시아권의 고궁이나 절은 어떨까, 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원래 오래된 건물이 주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고. 게다가 4월 첫째 주에 이 교토에서 벚꽃이 가장 활짝 핀다고 하니 주저 없이 여행지를 교토로 정했다.


    여행지를 결정하고 나니 여행 준비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되더라. 얼마나 열성적이었냐면 지인의 카메라도 빌릴 정도였다. 있는 카메라라고는 아빠가 준 캐논 사진기가 전부였는데, 2박 3일 여행에 떠나는 캐리어에 사진기까지 본격적으로 넣으면 부모님이 굉장히 수상쩍게 여길 것만 같았다. 카메라를 가져가고는 싶었지만, 그 사진기는 가져가기에 좋은 크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인에게 카메라를 빌렸다. 내가 이거 잃어버리면 새 것 사주겠다는 호언장담과 함께. 새삼 생각하지만 잘 챙겨 다녀서 다행이다. 삼십이 훌쩍 넘는 가격대의 사진기여서 가지고 다닐 때도 상전 모시듯이 가지고 다니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전날까지 천연덕스럽게 친구와 제주도 간다고 뻥을 쳐놓고 비행기를 타는 아침에 엄마에게 공항으로 나와줄 필요 없다고, 동네 친구랑 가는 거라 같이 공항버스 타고 간다며 안심시키고 혼자 집을 나왔다.


    드르륵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천천히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 도착 시간까지 확인한 후에 느끼는 그 해방감이란. 입술 사이로 미소가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그 느낌. 피식거리며 웃음을 흘린다는 표현을 그제야 만끽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읽는다면 내가 외출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집에서 사는 것 같겠지만 전혀 아니다. 부모님은 나의 외출에 대해 단 하나도 제한을 두신 적이 없다. 물론 내가 원체 늦게까지 돌아다니지도 않고(그럴 체력도 못된다), 어디 갈 때도 장소를 꼬박꼬박 말하고, 늦어도 언제까지 들어간다는 말을 잘 지킨 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두 분은 그렇게 빡빡한 분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 여행은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이지 않는가?


    내 시간을 내서 내 돈으로 마련한 비행기 티켓에 숙박에 여행 일정까지 전부 내가 하나하나 짠 내 여행.


    뭔가 내 손 때 묻어 더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내 여행.


    내 여행.


    그 소유격이 주는 달콤한 기분에 취해 나는 공항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른다.


    첫 번째 내 여행에서 가는 도시, 교토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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