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하나는 완벽 보장
니넨자카. 청수사로 향하는 천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돌담길이다.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간 재수가 없다는 소문이 있다는데, 개인적으로 너무한 게 돌담길이라 그런지 정말 길이 두툴두툴하다. 여기서 어떻게 안 넘어진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런 길을 다 걷는다면 행운을 누릴 만한 노력을 했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이 개미처럼 바글바글했던 버스였지만 서양인 부부와 버스 기사님의 배려로 마음만은 충만해진 나는 지친 다리를 니넨자카로 열심히 움직였다. 이곳저곳에서 기모노를 빌려 입을 수 있는 곳과 기모노를 입고 니넨자카를 걷는 관광객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일본 전통 의상을 빌려 입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을 보면 우리나라 경복궁 근처 한복집에서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돌아다니고 삼청동, 북촌 한옥마을, 그리고 인사동을 가는 모습이 연상됐다.
비록 나는 이곳 니넨자카에서 가보고 싶은 곳만 검색했던지라 이곳에서 기모노를 입을 수 있다는 걸 도착해서야 알았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기모노를 입고 청수사를 가봐야지.
그래서 이곳에서 가고 싶었던 장소란 ‘스타벅스 커피 교토 니넨자카 야사카 차야 점’이다. 결국 스타벅스였던 건데, 이 스타벅스 지점이 특별한 이유는 일본 전통 다다미방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니넨자카의 경사가 꽤 가파르기 때문에 길을 올라 골목골목 사이를 걸어야 이곳을 발견할 수 있다. 가게 외관이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는다. 물론 도심 속에 있었다면 전통적인 일본 가옥의 모습이기 때문에 한눈에 보이겠지만 스타벅스 건물 옆에도 다 똑같이 일본 가옥이 늘어져 있어 오히려 묻혀버린다.
그렇지만 나는 외관으로 이 지점을 찾지 않았다. 나 빼고도 여기를 가고 싶은 관광객이 이미 여기 앞에 줄을 서 있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면 무조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대부분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거나 생각하지 못한 더 좋은 장소라는 꿀팁이 기억나 실천해본 건데, 그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내부에는 저녁 식사 시간대가 거의 다 됐던 시간임에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2층에 다다미방이 있었다. 나 역시 2층에서 마시고 싶어 주문하기 전에 2층으로 향했는데 2층도 사람이 복작거렸다. 20여 분 정도 서성거리다가 간신히 2인 자리에 좌석을 잡아 가방을 내려놓고 주문하러 1층으로 갔다. 생각해보면 너무 한국에 있는 카페에 온 것처럼 행동한 것 같다. 외국에서는 가방 놓고 가면 훔쳐 가기 일상이라던데, 또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1층에서 주문을 하고 올라오는데, 2층에 1층 주문하는 곳 맞은편 위치에 또 다른 카운터가 있었다. 그곳에서도 음료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계산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음료를 다 마시고 그곳에 두고 나온 기억은 있다.
아무튼 2인 좌석에서 홀짝홀짝 음료를 마시며 거의 5시간 만에 처음으로 휴식을 가졌다. 요지야 카페에서 쉬며 녹차 라떼를 마신 게 오늘 음식 섭취의 마지막이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요지야 카페 편에서 내가 마시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고 했던 걸 기억하는지. 스타벅스에서 마셨던 라떼 한 잔을 추가하면 이날에만 3잔의 음료를 마신 셈이 됐다. 나다이 오멘에서 마신 차도 포함하면 4잔이다.
나다이 오멘에서 마신 갈색빛 차 한 잔.
요지야 카페에서 마신 녹차 라떼 한 잔.
블루보틀에서 마신 라떼 한 잔.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마신 라떼 한 잔.
총 네 잔.
이렇게나 마시는 걸 좋아한다니. 돌아보면 뭘 먹은 건 별로 없지만 왜 배가 고프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하도 많이 마셔서 물배를 채운 덕분이 아닐까 싶다.
2인 좌석에서 쉬다가 겨우 다다미방에 자리가 하나 나서 냉큼 그곳으로 옮겼다. 다다미 위에 앉아본 감상은, ‘딱히 특별한 건 없다’다. 그렇지만 한 번 쯤은 앉아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감성 때문이다. 좌식 다다미에 앉아 아래에는 시원한 대나무, 그리고 낮은 책상 위에 커피잔을 놓고 전통 가옥 안에서 쉬고 있다는 그 감성은 어디에서도 쉽게 느낄만한 건 아닌 듯싶다.
유유히 지는 노을빛이 가옥 안을 가득 채우며 비어버린 커피잔을 노을이 채우는, 느즈막한 저녁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