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자쿠라는 한국어로 밤 벚꽃 구경이라네요
니넨자카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나와 왼편으로 틀어 길을 걷다보면 내리막길이 나온다.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때 오른편으로 틀면 또다른 골목길이 나오고, 그 끝에는 마루야마 공원이 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이자 애니메이션을 보며 키워온 일본에 대한 환상이 이뤄진 곳이다.
마루야마 공원은 1886년에 교토 시에서 만든, 가장 크고 오래된 도시 공원이다. ‘기온의 요자쿠라’라고 불리는 커다란 벚꽃 나무가 있다. 요자쿠라는 밤 벚꽃 구경이라고 한다. 그 공원에서 하는 라이트 쇼가 예쁘다고 해서 적당하게 해질녘에 가본 건데, 여기서 정말 내 기대 이상의 경험을 맛보고 갔다.
마루야마 공원으로 가는 길은 다음 날 방문했던 이시베 코지와 맞닿아 있다. 교토에서 가장 걷고 싶은 거리로 유명하다는 것만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낮에도 걸어보고 밤에도 걸어본 사람으로써 언제를 추천하냐면 봄에는 무조건 밤이다. 벚꽃이 가득하게 핀 모습을 밝은 조명이 비춰줘서 낮 부럽지 않게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조명에 비춰져 벚꽃의 분홍빛이 미세하게 흐려진 그 모습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마루야마 공원에 가는 동안에 인력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딘가에서 신청하면 탈 수 있는 건 같긴 한데, 어둠 속에서 본 거라 그 모양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내가 알던 인력거 모습보다 훨씬 세련됐다. 인력거도 인력거만의 매력이 있겠지만 요즘 전동 킥보드가 유행인 걸 보면 교토에도 그런 킥보드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 번에 여행 가면 또 타봐야지. 비록 이시베 코지가 조금 울퉁불퉁하고 니넨자카와도 맞닿아 있어 인도가 올록볼록하지만 그래도 한 번 쯤은 타볼 만한 감성이 있을 것 같다.
슬슬 마루야마 공원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벚나무의 모습이 슬슬 드러나 사진에 담아보려한 흔적이다. 확실히 밤은 밤이었던 건지, 아직 내가 사진기를 잘 다루지 못한 탓인지, 벚나무가 잔뜩 물 먹은 듯이 흐려져 자칫 잘못하면 불난 것 같은 사진이 됐다. 아무리 찍어봐도 다 똑같이 벚나무에 불 난 사진만 찍혀서 그냥 포기하고 얌전히 마루야마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기온의 요자쿠라’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사진 밑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이는데, 그만큼 사람이 많았다. 내가 키가 작은 편이라 사진기도 열심히 들고 핸드폰도 위로 들어서 간신히 찍은 사진이다. 그때 사람 사이를 낑겨 들어간 경험을 비교하자면 출근 시간대에 9호선 탑승을 떠올려본다. 걷지 않아도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내릴 수 있는 마법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무서운 지하철, 9호선. 그 9호선을 교토의 한 공원에서 할 수 있다.
기온의 요자쿠라, 거대한 벚나무 사진을 괜찮게 찍고 나니 굳이 힘들게 가까이서 볼 생각이 사라져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사실 벚꽃 여행이라 벚나무만 기대하고 온 마루야마 공원인데, 주변에 노상점이 많아서 신이 나 주위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왜, 일본 학원물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인공들이 기모노 입고 마을에서 열리는 마츠리에 가는 장면이 종종 나오지 않는가? 마을에서 하는 축제나 학교 학예회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저게 어떻게 다 현실이겠어?’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근데 진짜였다. 진짜 링고 아메를 팔고 링고 아메는 엄청나게 딱딱했고 은갈치 색 양복을 입은 직장인 단체 손님이 빨간 상판에 앉아 회식을 하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풍경이 내 눈 앞에서 하하호호, 간빠이-! 하며 일어나고 있다니. 신기한 마음에 셀카도 몇 장 찍었는데, 그건 개인 소장하겠다. 생각해보니 그 모습과 왜 셀카를 찍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때의 감성은 또 그런 감성이었던 건가.
벚나무를 뒤로 하고 마루야마 공원 동쪽으로 가다보면 야사카 신사가 보인다. 굳이 동쪽을 찾지 않아도 그 방향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왔다갔다 한다. 무조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서 나쁠 일은 없기 때문에 나 역시 그곳으로 향했다. 동쪽으로 쭉 가면 기온으로 나오게 되는데, 커다란 3거리라 이곳에서 버스를 잡아타 숙소로 빠르게 환승 없이 갈 수 있다.
아무튼, 야사카 신사는 일본 3대 축제인 기온 마츠리가 열리는 곳이다. 축제는 7월에 열리며 병을 퇴치하기 위해 열렸던 행사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7월이 여름이지만 이 축제를 보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더 교토를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4월 벚꽃 라이트업 축제를 보기 위해서도 아주 좋다.
다만 이 야사카 신사에 어둠이 드리운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나보다 좀 더 퀄리티 좋은 사진 찍으신 분을 보길 바란다. 여기도 사진에서 불이 난다... 저 불이 나는 장소를 묘사하자면 원통형 종이 등불이 여러개 달려서 은은하게 촛불을 내는 모양이었다. 그곳 주변에서 소원도 빌고 걷기도 하며 덕담을 나누는 것 같았다. 다음 번에 방문한다면 잔돈을 가지고 소원도 빌어보고 싶다.
야사카 신사 정문으로 나오면 기온이 보인다. 시간 자체는 밤 9시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해가 진 지도 오래고, 내 다리는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빠르게 숙소로 돌아가 내일 남은 일정과 귀국을 준비하기로 했다. 2박 3일 교토 여행 동안 묵었던 숙소에 대해서는 다음에 풀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