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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칠칠 Jan 26. 2021

나의 첫 캡슐호텔 체험기

캡슐호텔 같지만 캡슐호텔 아닌 듯한 너


    혹 호주 여행기의 독자가 있다면 일본에 경유해서 호주에 갈 때 내가 일본 경유 숙소를 고를 때 가진 자신감을 기억할 수도 있다. 바로 이 교토 여행이 나의 일본 숙박에 대한 근거 있는 자신감을 만들어준 경험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숙소에 대한 자신감보다 에어비엔비에서 괜찮은 숙소를 잘 찾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이렇게 잘 찾는 내가 찾은 숙소니 당연히 좋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에어비엔비 초심자의 운이 따른 나의 첫 교토 숙소는 제법 괜찮았다. 딱 하나만 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별로인 한 가지 때문에 전체가 그닥 좋게 보이지도 않는다.




    교토에서 2박을 묶었던 숙소는 교토역 기준 서쪽에 위치한 니조 성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캡슐 호텔이라는 명칭이 막 들리기 시작한 때였는데, 그곳도 그런 캡슐 호텔의 컨셉을 공유했다. 누워서 잘 수 있는 좁지만 안락한 면적. 공유 샤워실과 각자 챙겨온 밥을 먹을 수 있는 공유 공간.


    복층으로 이뤄진 숙소였는데, 1층은 공유 공간, 2층은 관광객들의 숙소였다. 그때 내가 숙소에 들어왔던 시간대와 다른 사람들이 숙소를 오가는 시간대가 맞지 않아 나는 1층을 거의 나 혼자만의 공간으로 이용했다. 다다미도 놓여 있어 좌식과 입식 거실을 모두 체험해볼 수 있었다. 아침 10시까지 아침을 주문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이틀 동안 계속 오전 10시~11시 사이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을 수 없었다.


    2층에는 커다란 하나의 공간에 2층 침대 여러 개가 있었다. 중간중간에 침대에 매겨진 숫자가 붙어 있는 철제 캐비넷이 있어 그 앞에 각자 캐리어를 두고 옷도 둘 수 있었다. 투숙객은 각자 침대 하나씩을 배정받는다. 침대 옆에는 조그만 부직포 느낌의 파우치가 매달려 있었다. 변기만 있는 우드로 지어진 화장실 3개?와 샤워실 2개 등등이 2층의 나머지를 구성했다.


    그 2층 평면도와 침대 옆면을 그림으로 그리면 아래와 같다!


손그림으로 그려봤다. 순도 100% 손글씨.


    이곳에서의 생활은 제법 안락했는데, 내가 워낙 이동 동선이 없어서 그런 탓도 있다. 다 씻고 다음 날 입을 옷 등을 미리 꺼내두고 캐리어를 정리한 다음 침대에 쏙 들어가 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서 마주칠 일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이렇게만 보면 캡슐 호텔은 나와 같은 외향형 집순이에게 최고의 숙소가 아닐 수 없다.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도 않고 숙소에 있는 편의 시설을 이용하지도 않고 알아서 먹을 걸 해결하고 다 들어오는 투숙객 말이다. 실제로 나도 이곳에 머무르는 2박 3일 동안 굉장히 편안한 경험을 했고.


하지만 다시 캡슐 호텔을 선택한다면
반드시 성별을 분리해 숙소를 배정하는 곳으로 가리라.


    내가 이곳에 있을 때 마지막 날 밤이 돼서야 깨달은 사실인데, 이곳은 남녀 혼성으로 이용 가능한 곳이었다. 생각해보면 샤워실도 혼성 아니었나 싶다. 그냥 샤워실이 덜렁 두 개 있었지 남녀 구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혼성인지 아닌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가격 싸다고 체크인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딱 그 모습이었다.


    아무튼 당시에는 너무 편하고 안락하고 좋다며 발가락까지 꼼지락거리며 깊은 잠자리에 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아찔한 경험이긴 하지만, 그때는 좋았으니 좋은 기억이자 배울 점이 많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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