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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혼자 걷다.

길 위에서 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by 정원철

프롤로그

- 길 위에서 길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제는 아주 오래전 일이 되었다. 대학교 시절 흑석동 옥탑방에서 자취를 했다. 그 옥탑방은 흑석동 오르막길의 거의 끝에 있는 3층 집 옥상 조그만 방 한 칸이었다. 지금처럼 여름방학이 가까워지면 비좁은 방안은 더운 열기로 숨이 막혀 왔다. 덥고 답답함이 목까지 차면 옥상으로 나와 시간을 보냈다.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한강 너머를 내려다보면 수많은 집들의 불빛이 반짝였다. 집에서 새어 나온 불빛들은 좁은 골목을 지나 저 멀리 남산타워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수많은 불빛 중 미래에 나의 불빛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상상해 본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나의 창문으로 새어 나가는 불빛이 그 시절 내가 상상하던 그 불빛일까? 하는 회상에 잠긴다. “그 집이 무엇이라고 불나방처럼 수 십 년을 집착하면서 살아왔을까?” 일을 마치고 대리기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올림픽대로에서 서울의 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심리학과는 멀어도 너무 먼 곳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엔지니어로 건설회사에 입사하기까지 다 옮겨 적을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건축기사와 소방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이유로 건축 전공자들과의 경쟁을 뚫고 대기업의 계열사에 입사했다. 건설회사에서 엔지니어를 뽑는데 나의 경력으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어렵게 회사에 들어갔기에 절박하게 회사 일에 매달렸다. 오로지 성과를 내는 일에 몰두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밑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회사에서 올 해의 우수사원으로 표창을 받아도 다음에 주어지는 더욱 무거운 짐으로 기뻐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회의만 들어가면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지금에서야 그게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았다. 실적을 채우면 다음 해에 더 많은 목표가 생겼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견디기 어려웠다. 어느 날 다시 어두웠던 지난 세월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공포심을 안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면 당장은 황홀한 자유의 바람이 불어올 줄 알았다. 회사라는 성을 나와서 프리랜서 놀이하다가 죽는 편이 낫겠다 싶어 퇴직을 결심했다. 그러나, 퇴직한 5월의 빛나는 햇살은 나의 창문만을 비켜 비추었다. 돌이켜보니 텅 빈 집의 소파에 앉은 그날 아침부터 나는 겁을 먹기 시작한 것 같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던 컴퓨터 전원의 팬소리가 사라진 그날 아침에 난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어디라도 갈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어느 곳도 갈 수가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아침이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퇴직하고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다. 갇힌 생각을 풀 계기가 필요했다. ’열심히 일 한 당신 떠나라’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었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유럽여행을 선물하기로 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는데 여행이 힘이 되어 주길 바랐다. 마음을 정하고 열흘 정도 준비해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이 매 순간 행복한 것은 아니다. 혼자 떠나보면 알게 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불면과 혼밥의 고행을 각오해야 한다. 고행과도 같은 여행이 ‘살면서 하루가 이처럼 장엄하고 흥분되는 날이 있을까?‘하는 희열로 가득 차는 순간이 있다. 다시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하루가 내게 들어오는 날에 나는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 경이로운 경험이야말로 혼자 여행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여행의 시간이 쌓일수록 어쩌다 보니 오히려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조금 덜 한심한 중년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사는 게 그리 두렵지도 만만해 보이지도 않는다. 여행이 내게 준 진정한 선물이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침묵이 자꾸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묻고 답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왜 답을 찾아 헤매는지 다시 묻고 또 답을 찾는다. 무작정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달려가는 한국의 가장에게 자기 삶에 질문할 기회란 없다. 아버지도 그렇게 살아왔고 나도 가족을 책임지고 사는 것이 숙명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말이 누군가에게 호사스러운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일을 잠시 그만두고 여행까지 다녀오니 심지어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누구에게라도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다. 단 하루라도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세상으로 들어가 순수한 자신과 만나는 경험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해 주겠다는 용기를 내었다. 여행하면서 거의 매일 일기를 썼고 이것들이 모이고 쌓이니 퇴직 후 자화상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축복 같은 일들이 일어나도록 묵묵히 곁에 있어준 아내와 가족들을 위해 이 여행집을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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